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어쩌다 발견한 의미

어쩌다 #2

by 구재
일상이 식빵이라면 행복은 식빵 사이의 잼과 같다.
숨겨져 있지만 일상을 달콤하게 만들어준다.
- 김은주, <1cm> 중 -

이번 [어쩌다]에서는 어쩌고 매거진 에디터들의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어쩌다 발견한 의미를 들어보았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찰나의 순간이, 어느 날에는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요. 그런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디터들의 순간들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먼지

나는 매일 생얼로 등교한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일정이 있어서 예의 차릴 정도로만 화장을 했다. (파운데이션과 입술만 발랐다.) 그런데 친구 A가 나를 보더니 “오늘 화장했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호~ 나는 파운데이션과 틴트만 발라도 화장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날 저녁, 다른 친구 B와 통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했는데, 친구 B는 나와는 조금 다르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내 생얼이랑 화장한 얼굴이 그렇게 차이 나는구나…’ 하고 속상해했을 텐데.”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사람마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그리고 나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구나 하고.


그 순간 문득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깨닫게 해 준 순간이었다.



순수

나는 음식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럽다. 삶의 작은 기쁨, 말 그대로 소확행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서 먹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거기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다 지난주에 교내 샐러드집이 문득 떠올랐다. 몇 년 전에 먹고 참 맛있다고 생각했던 곳인데, 오랜만에 생각이 난 거다. 그래서 가봤더니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닭가슴살 샐러드만 팔던 것 같은데 이제는 베이글 샌드위치까지 함께 팔고, 다른 베이글들도 종류가 엄청 많았다. 나는 큰 고민 없이 메뉴를 하나 고르고 결제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맛있는 거다...!


풀떼기를 잘 안 먹어서 늘 고민이었는데 몸에도 좋은 것 같고, 한 입 한 입이 아까울 정도였다. 거기에다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먹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짧은 식사였지만 30분이란 시간이 꽤 행복하게 느껴졌다. 먹는 기쁨이란 게 이런 걸까 싶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소소하지만 아주 큰 행복이 되었다. 앞으로도 내게 큰 의미로 남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끔씩 찾아야 더 큰 행복이 되겠지.



구재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여전히 나무는 초록을 유지한 채, 차가워진 바람에 맞춰 춤을 춘다. 여름이 드디어 끝나는구나, 하고 좋다가도 갑작스레 추워지면서 콧물에, 재채기에, 고통받는 요즘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 2층 입구에는 소파가 있다. 평소 나는 짐을 잠시 둘 곳이 필요할 때, 도서관에 사람이 꽉 차서 앉을자리가 없을 때 이 소파를 이용한다. 오늘은 짐을 둘 필요도, 도서관에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왜인지 소파에 앉고 싶었다. 소파에 앉으니 오른쪽 통유리창 너머로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나를 비추고, 살랑거리는 초록 나무가 보였다. 한참 창밖을 구경하다가 그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양귀자의 장편소설을 꺼내, 늦여름을 만끽하며 책을 읽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에 잠겨 맥을 못 추고 있었는데 급히 산 아샷추가 날 살려냈고, 그토록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조용한 도서관에 슥슥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 이런 게 사소한 행복이라는 거구나. 느긋하고 나긋한 9월의 오후. 특별할 거라고는 없는 이 순간에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살고 싶음을 느꼈다.





여러분에게도 사소한 순간이 여러분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던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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