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칼럼 #9

by 구재


9788931010862.jpg 출처: 교보문고


편지,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생일에는 최대한 손 편지를 써주려 하고, 아무 일이 없어도 가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주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손 편지를 쓰다 보면, 제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감정들이 문장 사이로 스며 나옵니다. 그러다 울컥해서 울었던 적도 많아요. 그렇게 편지 한 장에는 진심이 짙게 담깁니다. 평범한 문장도 마음을 다해 쓰면 그 어떤 문장보다 뜨겁게 다가오는 법이죠. 그래서인지 제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편지는 마음의 온도를 전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 따뜻함은 상대를 진심으로 아낄 때만 가능하죠. 고마움, 미안함, 애틋함... 그런 감정들은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감정 없는 편지는 그저 공지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릴케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릴케는, 대체 얼마나 좋은 사람인 걸까요?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면 이렇게 다정한 글을 남길 수 있는 건지...!


익명 뒤에 숨어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말만 내뱉는 사람들만 보다가, 릴케의 편지를 읽으니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릴케는 알까요? 한 사람을 위해 써 내린 진심 어린 마음이,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있다는 걸요.


혼란스럽고, 주저앉고 싶을 때 (혹은 주저앉아 버렸을 때) 누군가가 제게 해줬으면 하는 말을 릴케가 해줍니다. 빨리 극복해, 빨리 일어나, 가 아니라 그래도 된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분명 이 순간이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기쁨이는 슬픔이를 미워하지만, 사실 기쁨은 슬픔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릴케의 생각도 비슷한 거 같습니다. 슬픔을 잘 다루는 것, 고독을 즐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죠. 슬픔 없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빨리 이 감정에서 벗어나 '좋은' 감정만 찾아오기를 바라죠. 누구나 외롭고, 슬프고, 우울할 때가 있는데, 이런 상태는 마치 '적절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잘 다뤄야 좋은 감정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이미 마주한 이상 우리는 변화하였고, 변화한 우리를 무시하는 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릴케는 릴케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꽤 단호하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모든 말이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지치고 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릴케의 다정을 느끼며, 고독을 찬란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주변 사람이 고독을 마주하고 있다면, 정성스레 쓴 편지 한 장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므로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이 아직 본 적 없는 커다란 슬픔이 당신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더라도, 어떤 불안이 및이나 구름의 그림자처럼 당신의 두 손과 당신의 모든 행위 위로 지나가더라도 당신은 놀라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그 무엇이 당신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인생이 당신을 잊지는 않는다, 인생이 당신을 손 안에서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생이 당신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어떤 불안이, 그 어떤 아픔이, 그 어떤 우울이 당신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왜 이들 상태를 당신의 인생에서 내쫓아버리려고 합니까. 왜 당신은 이런 모든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라는 물음에 끊임없이 뒤쫓기고 있습니까. 당신이 과도기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변혁되기를 무엇보다도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관찰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에게서 일어나는 일에서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일어나는 그대로 버려두십시오. - 70p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지식이 미칠 수 있는 곳보다 더 멀리 볼 수 있고 우리 예감의 전진 보루보다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기쁨을 견뎌내는 것보다 더 큰 신뢰감을 가지고 우리의 슬픔을 견뎌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슬픔이란 어떤 새로운 것, 어떤 미지의 것이 우리의 내부로 들어온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64p


우리가 슬픔을 가진 자로서 조용하고 끈기 있고 솔직할수록 보다 깊고도 보다 확고하게 그 새로운 것이 우리의 내부로 들어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욱 잘 획득하고, 그것은 더욱더 우리의 운명이 됩니다. -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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