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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긴가 Jun 09. 2020

번져가는 마음의 불길 속에서 나는 나를 붙잡았다.

요 몇주 내내 마음도 몸도 잔잔한 듯 강렬히 출렁이는 나날이었다.


작년, 만난 지 13년 만에, 부부가 된 지 7년 만에 미루고 미루던 식을 치르고 난 뒤의 허한 마음에서 일까.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나와 겨울 내내 씨름하며 화해도 하기 전, 코로나가 찾아왔다.

안 그래도 울렁울렁 나와의 지각변동 속에서 코로나는, 그나마 평온하게 유지하던 일상에 소용돌이를 몰고 와선 그야말로 올봄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찾아 헤매던 그 속에서 그나마 나를 지탱해주던 일상의 루틴이 뿌리째 흔들리자, 나는 어디한 곳 매달리지 못한 채 그야말로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휘청이며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은 나를 찾는 외로운 사색이 아닌, 가상의 생존의 위협을 마주한 채 허공의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나는 무엇인가를 갈구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곳에 면접을 보기도 하고, 몇몇 외주 작업의 일도 맡으며 그렇게 미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나마 지친 울렁이는 몸과 마음을 피했다.

엇인가 해야 할 일이 생기고, 무엇인가 기대할만한 일이 생기고 나니, 그제야 조금은 숨통이 쉬어진다.




그런 나를 나는 이제 충분히 살만해 보인다고 생각해서일까, 인생이란 원래 높고 낮음의 반복이라 그런 것일까. 잠잠하던 다시 찾아온 나는 이젠 살만한 나 대신, 남편을 타깃으로 잡았나 보다.


일이 바빠 주말 내내 정신없는 내 곁에서 이러쿵 저러쿵 시시콜콜한 농담을 거는, 언제 끝나냐며 함께 영화 보자는 눈치에 마감 압박의 업무를 소파 위에 들고 오자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뚱한 분위기에, 이도 저도 아닌 체 일은 줄지 않고 머릿속 돌아가는 일들 속에서 말장단 맞춰줄 대사까지 고민하다 보니 한편으론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괜히 섭섭하다.

아슬아슬 미묘한 분위기의 나날들 속에 오늘의 미묘함은 나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한 채 심술이 나버렸다. 오지 않는 면접의 결과를 기다리며, 바쁜 일을 끝내고 본업의 일에 치이는 와중에, 부담감을 덜어준다며 농담처럼 "안타깝지만..." 이라며 곧 면접 결과가 나올 거라는,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월급명세서를 보며, "근데 이거면 시급이 반이나 준거 아니야? 일을 안 하느니만 못한데?" 라며 애써 외면해온 현실을 들추어내며, "외주일 많이 들어오면 나 서브로 일할래, 일 더 많이 따와. 그래도 대학 때 공부한 거 잘 써먹네. 등록금은 본전 뽑겠어" 하는 농담처럼 던진 그 말들에.

한동안 잠잠하던 다시 찾아온 나는 성난 얼굴을 하며, 그런 말들의 당사자에게 화가 난 것인지, 바쁠 일거리를 찾으며 애써 그 현실을 외면하던 나에게 화가 난 것인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평온하던 우리의 아침이 한겨울 동파 추위처럼 냉랭해져 버렸다.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내 마음에 불같이 화를 뿜어내게 만든 원인은. 불이 붙은 내 마음은 불길이 번지고 번져, 애먼 사람에게 달라붙어선. 지난해 결혼 준비 내내 섭섭했던 그 날들이 생각나고, 그때도 지금도 잘했다 고생했다 기분 좋은 칭찬 한마디가 어려울까 설움이 넘쳐나다, 6개월 만에 받아본 결혼식 사진 앨범이며 액자며 또 쌓이는 내가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억울하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던 매번 집 청소는 나 혼자만 하는 것 같은 괜히 불공평한 것만 같은. 그렇게 알 수 없는 불길에 휩싸여, 언제는 최고라던 그를 세상 제일 나쁜 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불길 속에서 나는 다시 찾아온 나를 찾았다. 그제야 이성이 찾아온다. 이 마음의 불길을 조금이라도 더 터트리는 순간, 불길이 지나간 뒤에 남겨질 후회를 떠올린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을 쉬이 스스로 소강되길 기다리며. 나는 우둑허니, 남편과 거리를 두며, 또다시 찾아온 나를, 불길 속에 타오르고 있는 나를 하염없이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내 마음까지 불길이 번지지 않게 꼭 붙잡은 채.


불길이 꺼지고 나면 물어봐야지. 괜찮다고. 불길 따윈 나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너는 다친 데는 없냐고. 그렇게 쓰다듬어주어야지.


왠만해선 나가지 않는 집돌이 남편과 오랜만에 뒷산언덕을 올랐던, 그 상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금 나도, 그도 이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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