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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을 다시 만들자.

챕터 율마

by 메론

메론: '쿵더쿵 방과후'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앞서네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몇몇 아이들과 소규모로 가볍게 시작하려고 했어요. 방과 후 선생님께서 일 이주에 한 번 맡아주시면, 우리는 나머지 하루 이틀 정도만 커리큘럼을 짜면 되니까 부담도 적고요.


율마: 맞아요. 저도 오랫동안 그런 공간을 생각해 왔어요.


메론: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혹시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졌을 때가 걱정이에요. 제가 생각했던 건 정말 소박한 시작이었거든요. 사람이 많아지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도 많아질 테고, 부모님들끼리 혹은 아이들끼리 부정적인 시너지가 나는 조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각자는 좋은 아이들이지만, 특정 조합이나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교육 아마에서도 봤거든요.


율마: 그런 걱정 충분히 이해돼요. 아이들 관계라는 게 참 미묘하죠. 그런데 아이들 많을때의 장점도 있어요. 그리고 그런 부딪힘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설령 지금 시너지가 좋아도 아이들끼리 좀 크다 보면 저런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터전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안 일어나는 거는 선생님들이 계속 보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가 문제가 생기는 건 어른들이 안 보고 있을 때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으면 아이가 이런 감정이 나오는 이유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볼 수 있어요.


메론: 그러면 문제가 고조되기 전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율마: 네, 그리고 감정이 고조되는 걸 봐도 교사회 선생님들은 앞뒤 맥락을 다 알고 계시니까 적절히 대처하시더라고요. 항상 얘기하십니다. 계속 아이들을 보고 있어라. 보물섬에서도 두 분 선생님께서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걸 바탕으로 부모 상담해주시고 했었어요.


메론: 쿵더쿵 방과후를 하게 되면 선생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살짝 드네요. 덩더쿵때보다는 쉽게 하고 싶어요.


율마: 보물섬은 그런 면에서 참 좋았어요. 일단 선생님 두 분이 계셨고 굉장히 가벼운 분위기였거든요. 공간도 작아서 청소나 운영 부분에 대한 부담이 적었고, 선생님들 자체도 공동육아로 아이들을 키우신 분들이라 시스템도 익숙하고 아이들도 잘 이해해 주셨죠.


메론: '보물섬'은 몇 학년까지 다녔던 거예요? 운영비는 어땠나요?


율마: 원래 3학년까지였는데,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4-5학년까지 받기도 했던것 같아요. 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월 15만 원 정도로 기억해요.


선생님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저희가 안 쓰는 날에는 그 공간을 개인 미술 학원처럼 활용하셔서 공간 유지에 도움이 된걸로 알아요. 그런데 이전하면서 위치가 좀 애매해졌고, 주변 환경도 이미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다 같이 운동장에서 노는 분위기라 굳이 방과후를 보낼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참여 인원이 줄었던 것 같아요.


메론: 제가 생각하는 초등학교 생활은 적자생존, 경쟁, 사회생활, 어느 정도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보물섬이라는 쉼터를 아이에게 제공하고 싶다고 이해를 했어요. 둘째, 셋째 아이에게도 제공해주고 싶어서 전에부터 방과 후를 생각하셨다고 들었어요.


율마: 아이들이 덩더쿵에서의 인연과 놀이를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첫째 때가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 생각을 가졌던 분들과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것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보물섬에서는 덩더쿵처럼 자연체험 계속하고 여름에는 계곡에 가서 물놀이하고, 마당에 널뛰기 같은 거 만들어서 놀고. 대부분 자연물 가지고 놀고 남자애들은 또 목공 좋아하니까 나무 의자나 나무칼 같은 것도 만들고, 또 좋았던 건 미술 활동 자체가 덩더쿵처럼 자기가 느끼고 체험한 자연을 그리게 하고 표현하게 하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알던 친구들이니 긴장해야 될 필요가 없고 계속 만나서 놀던 대로 노는 거잖아요. 그럼 아이는 그곳에서는 마음이 편한 거죠. 보물섬 가면 아이 얼굴이 정말 편해 보였어요.

거기서 정말 원 없이 놀았죠.


메론: 첫째 아이는 보물섬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그 경험이 지금 '쿵더쿵 방과후'를 고민하는 저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클 것 같아요.


율마: 첫째 아이에게 보물섬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에요. 학교 빼먹고 다 같이 여행 다녀오고, 텐트 치고 영화 보고, 또 선생님 댁이 근처였는데 정원에서 밤에 감자를 구워 먹었던 이야기 하면서 그리워해요. 거기서 만난 친구와는 이름도 비슷하고 성향도 잘 맞아서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학교가 다르니 방학 때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고 그랬어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노는 학원'으로 소문나서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했데요. 동생들도 보물섬 다니면 좋을 텐데 없어져서 아쉽다고 하죠.


메론: 그때와 지금은 또 세대나 트렌드가 많이 변했잖아요. 예전만큼 부모님들의 참여도나 관심이 높을지도 의문이고요.


율마: 맞아요.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더 많은 품을 들여서라도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걸 찾아 나섰던 것 같아요.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물론 이것도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고, 요즘 부모님들이 참여를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만, 예전에는 공동육아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려는 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겠죠.


메론: 저도 공동육아를 하러 덩더쿵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이걸 깊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쿵더쿵 방과후를 통해 가벼운 공동육아를 이어나가고 싶긴 해요.


율마: 함께 할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있는 건 확실히 아이들에게 좋아요. 저희 첫째와 둘째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커요. 둘째 때는 학교 끝나고 같이 놀 친구가 더 없어요. 대부분 바로 학원에 가버리니까요. 학교 방과후도 한두 번 재미있어하다가 지겨워하는 경우가 많고요.


특히 저희 아이 학교는 좀 더 공부 위주라 재미있는 방과후가 별로 없어요. 그냥 엄마들이 아이들이 늦게 하교했으면 해서 방과후를 넣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방과후 한다고 친구들이랑 만나 노는 건 아니고 또 다른 학습의 연장이라고 봐요.


메론: 듣다 보니 초등학교 친구들을 사귀어야 해서 방과후 교실 몇 개는 들어야 하지 않나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 전제가 틀릴 수 있겠네요. 그럼 '쿵더쿵 방과후'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가 적당할까요? 주 5일을 해야 할 수도 있겠어요.


율마: 일주일에 세 번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직 한글이 완벽하지 않으니, 책도 읽어야 하고 기본적인 공부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계속 놀다가 집에 와서 공부하려면 힘들잖아요.


메론: 차라리 '쿵더쿵' 멤버들끼리 도서관에 가서 같이 한글이나 수학 공부를 하는 것 어떨까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경쟁심도 생기고, 긍정적인 시너지가 날 수 있거든요.


율마: 좋은 생각이네요. 예전에 첫째도 친구들하고 같이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되니까 충격받아서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런 경쟁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어요.


메론: 공동육아로 키워도 공부 잘하는데 문제는 없나요?


율마: 공동육아 출신 중에 똑똑한 친구들 많았어요.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학습능력이 좋은 아인데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오신 분들이었어요.


메론: 얘기를 들어보니까 결국 유전자 따라가는 거지 선행을 하고 안 하고랑 관련성이 적다고 느껴져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계속 놀게만 한다고 해서 공부 잘할 애가 공부를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는 건 아니네요.


율마: 자기가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걸 본인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 거부감은 적어요. 워낙 친구들에 비해 실컷 놀았으니, 이제 공부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수긍하고요. 자기도 할 말이 없죠. 학교 수업 열심히 듣고, 놀 땐 확실히 놀고. 많이 노니까 그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잘 노니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특별히 문제없이 초등 6년을 지낸 것 같아요.


메론: 잘 놀고 인성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정리가 되나 보네요. 저는 그게 최고의 자산이자 경쟁력인 것 같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한테 둘러싸여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경험만큼 큰 자산은 없겠죠. '쿵덕쿵 방과후'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네요.


율마: 맞아요. 첫째에게도 학교가 전부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학년 때는 계속 여기서 친구를 못 사귀어도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고, 안 맞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해 줬죠.


예전에 까미 선생님이 '동글‘이라는 프로젝트로 방학 때마다 덩더쿵 졸업생들이랑 보물섬 아이들을 모아서 이우학교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의견 내고 소통하면서 노는 활동을 진행해 주셨는데, 그때 공부만 하는 형 누나들을 본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걸 추구하며 성장하는 예를 본 거죠.


공동체 활동경험을 동생들에게 전하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첫째가 관계를 더 넓게 보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돌아보니까 그런 경험들이 진짜 보물이었던 거더라고요.


메론: 그럼 두 동생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대략 로드맵이 나와 있는 거네요. '쿵더쿵 방과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네요. 율마가 보물섬을 새로 만들겠다! (웃음)


율마: (웃음) 그건 아니에요. 나는 못 만들어요. 혼자서는 뭐든지 안 되더라고요. 공동체를 만든다는 건 한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계속 같이 가야 돼요.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중간에 나가떨어지지 않아요.


메론: 이제 '쿵더쿵 공동체'를 통해서 '보물섬'을 만들 수 있겠다. 만들면 좋겠다!


율마: 나는 혼자 못한다.


메론: 맞아. 원맨쇼로는 안 돼요.


율마: 근데, 아이들한테 진짜 공동체가 필요해요.


메론: 그걸 결론으로 할게요.



인터뷰어: 메론

인터뷰이: 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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