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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Sep 11. 2022

나를 받아주오

글을 쓰는 마음

‘나는 왜 글을 쓸까?’


언제나 그랬듯 꾹꾹, 마음의 소리가 흩어져 버리기 전에 글자를 새겼다.


‘종이에라도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랬다. 누구에게라도 꺼내 보일 수 없는 밑바닥을, 거칠게 내뱉는 감정의 표출을, 종이는 말없이 품어주는 것이다. 아픈 이에게 어떠한 자극도 가하지 않는 존재. 펜이 남기는 날카로운 흔적을 가만히 가만히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다. 받아들여지는 기분만으로 치유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터놓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에 상처받은 적이 있는가? 타인과의 소통에서 표현의 한계와 공감의 부재, 완전한 단절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곤 했다. 처음에는 그 딱딱한 표정이 아팠고, 차가운 분석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내 자신의 과몰입이 한심했음을 깨달았다. 나의 감정에는 대답이 필요치 않았다. 그게 판단과 조언, 해결책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언제부턴가 말을 아끼게 되었다. 대신 종이를 찾았다. 문제는 주로 마음에 있었다.


“씀”으로써 그 마음에 마음을 썼고, 쓰는 동시에 받아들여졌다. 밑바닥까지, 아니 지하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모조리 써 내려갔다. 손과 펜과 종이, 그리고 시선과 정신이 한 곳으로 모여서 글자를 만든다. 힘을 주면 종이가 눌려 한 자 한 자 새겨지는 감각이 좋았다.     


글은 판단하지 않는다. 외부와 단절된 혼자만의 세계, 종이 위에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누리겠다. 글을 읽을 누군가를 상정하는 순간, 진실의 형체가 일그러진다. 그 시선에 턱턱 걸려 고장 난 트럭처럼 한가득 쓰레기 더미를 실은 채, 멈춰 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않을 종이만이 끔찍한 쓰레기 더미를 마음껏 비워낼 자유를 선사한다.     


종이 위에서는 시공간도 자유롭다. 언제라도 5년 전 겨울, 혼자 인생 계획을 세웠던 잠실역 롯데리아 구석 자리로, 혹은 1년 전, 아이들에 치여 책상에 엎드려 넋두리를 쏟아내던 교실로 데려다준다. 그곳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서툴러서 조금은 안쓰럽고, 한편으로 때가 덜 타서 웃음 짓게 되는 옛날의 나를 만나고, 이내 부끄러워져서 황급히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때 그 시절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이 세월이 지날수록 반갑지만 낯설다.    


종이는 시시각각의 “마음”을 비우는 동시에 붙잡아둔다. 내 20대 시절을 고이 간직한 수십 권의 노트가 너의 어설펐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누군가를 겉모습으로, 당장의 상태로 판단하지 말라고, 너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세월이 지나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혹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의 원동력은 두려움이었고, 쓴다는 것은 회피이자 직면, 명상 혹은 여행, 그리고 삶의 태도였다. 그리고 지금, 한동안 종이에 머물러있던 글을 노트북에 옮긴다. 이 글은 2차 가공물이다. 1차로 쏟아냈던 쓰레기 더미를 뒤져 표현을 건져낸 다음, 조각조각 맞춰내는 공정. 정제된 문장을 내세워 종이에서 종이로, 진심에 가까운 마음 그대로, 타인에게 닿고 싶다.

받아들여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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