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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Sep 11. 2022

나를 받아주오

‘글을 왜 쓸까?’

‘종이에라도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그래서 쓰게될 때가 있다. 남에게 꺼내 보일 수 없는 밑바닥, 날것의 감정 표출을 종이는 말없이 받아주는 것이다. 아픈 이에게 어떠한 자극도 가하지 않는 존재. 종이는 펜이 남기는 날카로운 흔적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받아들여지는 기분만으로 치유되곤 했다.


손과 펜과 종이, 그리고 시선과 정신이 한 곳으로 모여서 글자를 만든다. 힘을 주면 종이가 눌려 한 자 한 자 새겨지는 감각이 좋았다.


글은 판단하지 않는다. 종이 위에서는 자유롭다. 글을 읽을 누군가를 상정하는 순간 진실의 형체가 일그러진다. 그 시선에 턱턱 걸려 고장 난 트럭처럼 멈춰 서게 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종이만이 쓰레기 더미를 마음껏 비워낼 자유를 선사한다.     


종이 위에서는 시공간도 자유롭다. 언제라도 5년 전 겨울, 혼자 인생 계획을 세웠던 잠실역 롯데리아 구석 자리로, 혹은 1년 전 책상에 엎드려 넋두리를 쏟아내던 교실로 데려다준다. 그곳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서툴러서 조금은 안쓰럽고, 한편으로 때가 덜 타서 웃음 짓게 되는 옛날의 나를 만나고, 근데 참 부끄러워져 황급히 현재로 돌아온다.


종이는 시시각각의 마음을 비우는 동시에 붙잡아둔다. 20대 시절을 고이 간직한 수십 권의 노트가 너의 어설펐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누군가를 겉모습으로, 당장의 상태로 판단하지 말라고, 너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세월이 지나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혹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의 원동력은 두려움이었고, 쓴다는 것은 회피이자 직면, 그리고 치유였다. 그리고 한동안 종이에 머물러있던 글을 노트북에 옮겨본다. 쓰레기 더미 속 마음들이 이제라도 나에게, 남에게 받아들여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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