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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Sep 11. 2022

일기 대필

2022년 9월 8일 금요일 4학년 O반 O번 김OO


5교시가 영어였다. 들어오시자마자 내일이 추석 연휴라며, 오늘은 교과서 필요 없다고 하셨다. 야호! 추석 특집 마리오 게임을 한다네. 알아두면 좋을 추석 상식과 넌센스 퀴즈, 우리 학교 관련 문제를 골고루 냈다며, 이걸 왜 풀지 싶어도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관련이 있다고 도움 될 거라 하셨다. 문제마다 점수가 다 다르다, 당연히 틀려도 된다, 맞고 틀리고에 연연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알아가라, 재미로 푸는 거다, 그리고 또 뭐라 뭐라 숨도 안 쉬고 신신당부하신다. 당연한 걸 왜 말하지. 얼른 문제 풀고 싶다. 소윤이가 번쩍 손을 들고 쌤 래퍼예요?라고 말했다. 내 말이. 그래도 늘어지는 잔소리보단 2배속 속사포 잔소리가 낫다. 이번엔 또 갑자기 연기를 하신다. “아, 모르겠어. 틀렸어. 쌤 이걸 어떻게 알아요? 아 내가 맞힌 건 1점밖에 안돼. 힌트 힌트! 쌤 뭐라고요? 못 들었어요! 다시!”라고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으시고는, 그러니까 이렇게 하지 말라고 선수 치신다. 그냥 재밌게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밑밥을 얼마나 많이 깔아 두시는지. 딴 반에서 고생깨나 하셨나 보다.

지난주에 우리 반 담임쌤이 영어쌤한테 교실에 마이크 있으니까 빌려 써라고 하신 걸 들었다. 선생님은 마이크를 처음 써본 사람처럼 신나 가지고 혼자 40분 내내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영어로 문제 읽고 해석하고 힌트 주고 진행하고 리액션하고 중요한 단어 짚었다가 노래도 부르고 보너스 퀴즈에 다시 질문, 부연 설명, 또 연기까지. 저러다 마이크에서 연기 나는 거 아닌가. 원맨쇼가 따로 없다. 듣고 있자니 나도 홀린 것처럼 문제 풀고 환호하고 대답하고 앉아 있다.  이번 마리오 게임은 문제 난이도랑 유형 밸런스가 꽤 괜찮았다.

중간에 뜬금없는 아재 개그 문제를 틀려서 분했지만. If the king falls? 이걸 킹콩이라고 하질 않나. 그리고 또 king is on the right side 그러니까 오른쪽 왕 왼쪽 왕을 우왕좌왕이라고 내다니, 생각할수록 king 받는다. 나름 새롭게 안 것도 있다. 한국 4대 명절, 추석 음식이랑 미국에 추석 비슷한 추수감사절도 배우고, 그때 먹는 칠면조 turkey, 그리고 터키가 나라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꾼 것까지. 아 그리고 영어쌤 이름도 처음 알았다. 나 말고도 3명인가 그 문제를 틀렸다. 20문제쯤 정신없이 퀴즈 다 풀고, 점수를 계산하라고 하셨다. 재미로 하는 거라면서 점수는 왜 물어보는지. 그래도 나 정도면 고득점이다. 점수별로 손을 들라고 하셨다. 30점 이상부터 쭉쭉 점수가 올라가더니 한 둘씩 손을 내리고 결국 우리 반 최고 기록은 3문제 틀린 사람들이었다.

마지막까지 손 든 네댓 명한테 교실 앞으로 나오라 하셨다. 걔네는 목숨 걸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오! 주영이가 이겼다. 좋겠다. 1등 선물이 있는 건가. 아니 저것은! 대용량 초콜릿 팩이었다. 주영이더러 우리들 하나씩 나눠줘라고 시키셨다. 추석 선물이랬다. 우와!! 다 같이 박수쳤다. 수업을 5분 일찍 끝내주셨다. 아싸! 추석 선물이 따로 없다. 영태가 초콜릿을 맛보더니 교탁 앞으로 나가서는, 그 초콜릿 이름을 적어간다. bou 어쩌고.. 영어 이름을 베껴 쓰는 게 아닌가. 근데 웃긴 건 퀴즈는 한 문제도 안 풀고 텅 빈 활동지를 갖고 나가서 거기다가 초콜릿 브랜드 알파벳이나 적는 거다. 웃기는 애다. 수업 시간 내내 뭐한 거야. 신우도 나가서는 이거 얼마냐며 묻고, 쌤은 맛있냐면서 신경 썼다고 생색내셨다. 맛있긴 했다. 나도 집가서 bou 어쩌고 초콜릿 사달라고 해야지~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써봤다. 나는야 일기 대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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