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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Oct 04. 2022

사춘기 vs 사이코 vs 사랑꾼

#2 학교(아침)

4교시 전, 왁자지껄한 6학년 교실.

학생1    (사물함 위에 걸터앉은 채) 아 또 영어.  
학생3    (학원 숙제를 꺼내놓으며) 자리에나 앉아.
교사      (교실에 들어와서) Hi, guys. How are you today?
학생들   (각자 외치며) Hungry. Not bad. So so.
학생1    Fu*k 최악. 싫어! (키득거리는 학생들)
교사      Watch your mouth. Today, we are going to..
학생2    (도중에 말을 끊으며) 야 너 입 닥치래.
학생1    너나 닥쳐 (중지를 들어 보이며) Fu*k fu*k!
학생3    (소리를 지르며) 쌤 얘가 욕했어요!
학생4    야 또 싸우냐. 적당히 해라.  
교사     다 조용히 해. 공과 사 구분 못 해? 지금 수업이고 뭐고 자세가 이게 뭐야.
학생1    쌤은 왜 조용히 안 하는데요? 쌤 구부정한 자세나 신경 쓰세요.


상상 교실 속 아이들은 매번 전두엽이 마비된 상태다.


이때 교사도 별수 없이, 교사 기능을 하지 못하니 마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가끔 이렇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다 보면, 실제 교실이 천국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상상이 현실로 될 가능성! 그들의 전두엽 마비 증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가면 된다고. 요즘 아이들은 mz세대를 뛰어넘는 사고방식을 가졌고, 우리와 뇌 자체가 다를 수도 있다며, 뻐큐 라고 하면 노, 유 뻐큐라고 맞받아치는 식이니, 그렇게 쿨하게 지내라고 했다. 뻐큐가 더 이상 뻐큐 구실을 못하고 바보 말미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면이 보인다.


‘학부모님, 아이들 유학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위아래 없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일찍부터 경험할 기회! 뉴욕 할렘가 못지않은 힙한 교실! 그러니 민원을 넣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말하자니, 나부터가 적응이 안 된다. 뻐큐 뻐큐 하다가 내 전두엽도 마비될 것 같다.




얼마 전에 6학년 반에서 보결 수업을 했다. 올해 4학년만 보다가 덩치 큰 사춘기 아이들을 보니, 처음 교사가 된 것처럼 신기하고 어색했다. 그들은 유난히 드세고 말이 험했다. 초면이라 그런지 서로 기분 좋게 소통하고 왔지만, 속으로는 만약 여기서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또 누가 저런 행동을 해서,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각종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도무지 답이 안 떨어졌다. 갑자기 남자애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 아이들과 말이 트여 친해졌다가 선 넘는 장면, 어설프게 혼내다가 본전도 못 찾고 틀어지는 장면 등이 떠오르며 괜한 걱정이 휩싸였다.


질풍노도 사춘기 아이들은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침을 뱉는 행위를 하며,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감정을 필터링 없이 내비치고, 간섭이나 구속에 질색팔색 반항적인 경향을 보인다는데. 그때 심기를 건드리거나 훈계를 늘어놓으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다시 그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는 이번에도 농담처럼 대답했다. 사이코 드라마를 찍는다 생각하라며, 아예 또라이처럼 화를 냈다가 웃었다가 혼냈다가 웃겨주면서 분위기를 휘어잡아야 한다고, 잘해주기만 하지 말고 시시때때로 돌변하며 긴장감을 줘야 말을 듣는다고 했다. 급기야 “사이코처럼 살아야 패스 할 수 있어 세상이란 시험”이라는 펀치라인을 만들며 뿌듯해했다.


그래. 연기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내식대로 대했다가는 교실 붕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갈 테니, 정신 바짝 차려서 사춘기를 뛰어넘는 선생님이 되자.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쓰앵님 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물러 터진 본모습을 들켜선 안 된다.


교사 생활은 드라마로 치면, 1년 약 191회의 일일연속극이고, 회당 약 6시간 분량이다.


연기라 하기엔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메소드 연기법을 추구하면 일상과 연기가 섞이는 법이다. 연기자의 삶은 녹록지 않다. 배우들 인터뷰를 보면, 알 파치노는 형사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거리에서 민간인을 체포하려고 한 적이 있고, 김명민은 루게릭병 환자 역할을 위해 20kg 이상 감량하며 저혈당 증세를 겪기도 했다. 노력파 배우로 유명한 박정민은 전혀 피아노를 칠 줄 몰랐지만 900시간 동안 연습에 매진해서 대역 없이 피아노 신을 소화했으며,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법조문을 비롯한 속사포 대사를 위해 7개월 동안 고시 공부하듯 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성공적인 사이코 연기를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창 외모에 집착하고,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을 고려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탈색이 유행이란다. 가발을 써볼까. 피어싱이나 타투, 염색, 말고도 트렌디한 아이템을 섭렵해서 겉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아보자. 최신 인싸 용어를 익히고, 아이돌 뮤직비디오도 놓칠 수 없다. 무반주 댄스는 기본이고, 뮤지컬 배우처럼 웅장한 발성으로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 아니, 다 헛소리다.


뭐니 뭐니 해도, 배우의 기본은 대본 숙지다. 아이들의 도발에 우물쭈물하지 않고 잘 대처하려면, 상황별 대사를 달달 외워 연습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레디 액션!’ 사인을 받으면 자유자재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프로 배우가 되자.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새 학기에 컨셉을 잡고 친구들을 사귀는 마당에, 교사가 날 것 그대로 나서서야 되겠는가. 이제 새 학교에 가면 지금처럼 애들한테 ‘선생님은 왜 이렇게 착해요? 화를 안 내요?’라는 말은 듣지 않으리. 지금부터 미친 연기 연습에 돌입하면 내년에 “정체불명 파격 연기로 6학년 교실 장악” 까지는 아니어도, “사춘기 위에 사이코 교사, 아슬아슬 교실 붕괴 모면" 정도의 헤드라인은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헛소리다.


안 맞는 옷 입고 무리수 연기하다가, “첫 수업부터 연기력 논란”, “전무후무 발연기에 주의집중력 폭망” 타이틀이 따르고 줄줄이 악플만 달릴 것이다. 사람은 결국 생긴 대로 살기 마련이다. 천의 얼굴 될 거였으면 진작에 배우 했지. 이런 멘탈로 배우 하다가는 메소드 연기고 뭐고 공황상태에 놓여 마약에 손댔다가 적발돼 교사 자격 박탈 처분을 받는다.     


그만두자. 망상에서 시작해서 망상으로 끝나는 파괴적인 사고 회로부터 끊어야 한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두려워하느라 하지도 못할 행동 결심하고, 결심하자마자 포기하는 식으로 결론짓는 게 본디 망상의 매력이긴 하지만, 보다시피 정신 건강에 안 좋다. 아무래도 역시 마음이 바로 서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건 연기도, 망상도 아닌 사랑! 마음에 감사와 사랑이 흘러넘치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아담스 애플>이라는 덴마크 영화가 있다. 브뤼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4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극단적인 캐릭터와 희한한 줄거리로 우화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인공 아담은 끔찍한 고통과 절망에도 초월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며 기적을 체험한다. 이 영화가 현실과 믿음 어느 쪽을 조롱하는지 얼핏 헷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믿음에 마음이 기울었다.


아이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교사 본인이 사랑에 사로잡혀 있으면, 같은 상황도 180도 달라지지 않을까. 세뇌는 무섭다. 끊임없는 사랑 고백과 격려와 긍정 확언으로 아이들의 전두엽을 마비시켜야겠다. ‘나는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사랑한다’, ‘선생님은 나를 사랑한다’, ‘우리 반은 사랑이 넘치는 반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무한반복 재생하며 악을 선으로 이겨보자. 그런 의미에서 아까 대본을 극단적인 사랑꾼 버전으로 각색해본다.


#2 학교(아침)

4교시 전, 왁자지껄한 6학년 교실.

학생1    (사물함 위에 걸터앉은 채) 아 또 수업
교사      3반~! 4교시라서 피곤하지. 기지개 한 번 펴볼까? 어깨를 쫙 펴면 활력이 생긴대. 오늘 컨디션 안 좋으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만 노력해보자! 생각보다는 재밌을거야~
학생3    (학원 숙제를 꺼내놓으며) 응, 노잼~~
교사      오! OO이가 어떻게 알고 페이지를 정확하게 펴놨네. 68쪽 맞아! 덕분에 수업할 힘이 생긴다. 고마워~!
학생1    (교실을 돌아다니며) 저는 교과서 없는데요?
교사      괜찮아! 책 없이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워.
학생2    우엑
교사      어쩜 저런 소리를 내도 사랑스러울까. 자 이왕 수업하는 거 즐겁게 해보자! Okay. Let’s start. I’ll show you a picture. What’s this? 아는 사람?
학생3    반 고흐 그림이요!
교사      (엄지를 치켜 세우며) That’s right! There are many things in the room.
학생1    으아 (바닥에 엎드리며) 침대 보니까 자고 싶다.
교사      와 OO이가 침대를 발견했네. 좋아. I wish there were a bed in the classroom, too. That would be nice, but wake up! 얘들아, 또 어떤 게 보여? There is a bed, a window and a table. What else?
학생4    저거 고흐 그림 얼마였지? 저거 얼마예요?
교사      글쎄, 엄청 비쌀 것 같은데? 암만 해도 너희만 하겠어? You guys are a priceless materpiece! you know? so, what can you find in this picture?
학생5    There are chairs and some paintings.
교사      Great! Today, We are going to learn the expressions, There is, and There are.. 오늘 우리는 공간 내부를 소개하는 말을 배울 거예요. 유익한 표현 알아보고 스내치 게임으로 연습해봅시다. 재밌게 게임하다 보면 There is 표현 마스터가 될 거예요! 파이팅!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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