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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Aug 12.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영화는 어둠에서 시작한다. 제목이 희미해지고 검은 배경에 한참 동안 기괴한 사운드가 이어지더니 새소리와 함께 날이 밝고 멀리서 어떤 가족의 피크닉 여정을 비춘다. 다음날 아침에도 남자는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여느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수레에 정체 모를 자루를 싣고 돌아온 남자. 물건으로 남은 무언가. 물건으로 쓰이지도 못한 무언가. 그들은 이 화면에서 내내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는 가정부들에게 옷가지 중에서 갖고 싶은 걸 하나씩만 고르라며 생색을 내고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문밖에 개가 덩그러니 남겨진다. 여자는 닫힌 방에서 모피와 립스틱을 챙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문을 뚫고 들어오지만, 점점 커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남자들이 거실에서 수용소의 효율적인 시스템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에서 실체가 드러난다. 개가 짖는다. 바깥은 죽음이다.


남자와 여자의 행위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지킨다. 영화는 굳이 남자가 방마다 문을 닫고 잠그고 불을 끄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여자가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면서 잡초를 뽑고 포도덩굴로 수용소 벽을 가리며 자신만의 낙원을 만드는 모습을 강조한다. 닫고 잠그고 끄는 사람과, 뽑아내고 가리고 꾸미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세상이 안락하고 평화롭게 그려질수록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계속해서 대비를 만들어낸다. 여자의 치장과 아이의 울음소리. 여자의 웃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빨간 꽃 클로즈업과 다음 장면 흰색 정장을 입은 남자. 파티에서 흰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여자에게 전출 소식을 알리고 여자는 죽어도 못 떠나겠다며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서 그곳을 지킨다. 그곳의 일상은 벽과 담과 문으로 지켜진다. 참혹한 진실이 벽을 넘어 들려온다. 닫힌 벽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비명과 총성. 아기의 울음소리가 절규로 들린다.


사과를 놓는 소녀와 산 채로 화로에 구워지는 마녀

소녀의 피아노 연주와 사라진 할머니

사과를 두고 다퉜다며 들리는 총소리

선한 마음도 무참히 일그러지는 곳..


겨울이 되고 남자들은 헝가리 작전에 돌입한다. 세상이 얼어붙어 눈으로 덮이고 수영장 풍경도 황량한데, 이 와중에도 정원 온실 속 식물은 초록색이다.


회스는 파티장 가장 높은 곳에서 회스 작전을 구상하다가, 아내에게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내려가고 토하고 다시 내려간다. 어느새 수용소는 박물관이 되었다. 그들의 신발들이 전시장 안에 켜켜이 쌓여있다. 청소부들이 쓸고 닦는 소리, 나아가 진공청소기가 다 빨아들이는 소리. 이 소리들 마저 기괴하다. 다시 루돌프는 구역질한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간다. 아래로, 더 아래로.. 그가 꼭대기에서 아래로, 어둠 속으로 잠기며 영화가 끝난다.  


화면이 꺼지고 시작할 때의 사운드가 재생된다. 눈을 감아도 소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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