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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나는 doing 모드만 아는 바보

by 리아

항상 유튜브나 앱으로 사이버 명상을 하던 내가 드디어 현실 세상에서 명상을 배우는 첫날이었다. 몇 년째 홀로 명상이란 걸 하긴 했지만, 선생님께 직접 체계적으로 배우는 건 처음이라 설렜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로 꽤 먼 주택가에 위치한 명상원. 수강생은 3명으로 남자 2, 그리고 여자인 나 하나였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까지 첫날부터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수강생과 선생님의 간단한 자기소개로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10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자해와 심리적 문제가 있었고 휴직과 이직으로도 해결되지 않아 퇴직 후 명상 지도자의 길을 8년째 걷고 계셨다.

어쩐지 회사 생활로 지친 선생님의 자기소개가 공감이 되어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삼켰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doing 모드로 살고 있어요. 명상을 통해 그 에너지를 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는 being 모드로 전환하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명상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습이 시작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싱잉볼(명상에 사용하는 소리가 나는 그릇과 같은 도구) 소리가 점점 방 안을 채웠다.

천천히 호흡을 하며 선생님의 가이드에 집중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뭘까?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무것'에 포함되지 않을까? 그럼 이 생각은 어떻게 멈추지?

난생처음 받는 지시에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항상 무언가를 하라고, 해야 한다고, 그것도 잘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환경에 익숙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몇 년 전부터 MZ사이에서는 부지런히 사는 '갓생'이 트렌드다.

회사에서는 고용자로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하고

가족 내에서도 자녀,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젠 그 이후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까지 '잘' 살아야 한다니, 정말 살기 팍팍하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바삐 움직이며 완벽하게 해내는 일상을 ‘잘 사는 인생’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렇지 못한 삶은 망생이나 미생일까? 꼭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걸까?


쓸모에서 벗어나 아무 역할도 주어지지 않은 나를 느끼고,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있는 내 존재를 감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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