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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요 Feb 14. 2022

심상치 않은 뉴페이스 : ENHYPEN

이제 와서 하는 2021 케이팝 리뷰 ①

저는 신인 그룹 무대를 보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포인트가 딱 있어요.


다들 눈이 빤짝빤짝 빛나는데, 그건 잘해 보이겠다는 독기이기도 하면서 긴장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모든 걸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시기니까요.


또 퍼포먼스적인 면에서, 개개인의 스타일보다는 팀의 합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데뷔곡은 죽도록 갈고닦아 연습을 하기 때문에 합이 맞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연차가 쌓이고 어느 정도의 자유도가 생기면 이제 본인만의 스타일을 표출하고는 하죠.


소속사의 기획적 개입이 가장 클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팀을 만들 거야!라는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천하는 단계니까요. 그 후로는 팬덤의 반응에 따라, 점차 나타나는 멤버들의 성향에 따라, 혹은 유행에 따라 방향성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데뷔곡이 꼭 그 가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아티스트를 세상에 내놓을 당시의 소속사의 의도를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은 맞습니다.


종합해보자면, 데뷔 초는 개인의 수행력이든 콘셉트이든 가장 '의도된' 것을 볼 수 있는 때입니다.


무튼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신인들은 데뷔를 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팬들을 직접 보지 못한 아이돌들도 있을 겁니다. 영통 팬싸(영상통화 팬사인회)에서 팬이 외쳐주는 응원법을 듣고 눈물을 보인 아이돌도 있었죠. 오프라인 행사가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함성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너무 슬프지 않나요? 분명 사랑받고 있는데, 누가 사랑을 주는지는 볼 수가 없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공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세상이지만, 인간이 육신을 가진 존재인 이상 물리적 접촉을 통한 감정의 교류는 디지털로 대체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설하고,

작년에도 정말 눈길을 잡아끄는 신인들이 꽤 많이 등장했습니다. 요즘 아이돌들 정말 잘합니다. 소속사들도 그렇고요.


무튼 그중에서도 제 눈에 유독 들어왔던 아이돌 두 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이그룹, 걸그룹 각 한 팀씩입니다.


첫 번째, 빌리프랩 소속의 보이그룹 ENHYPHEN입니다.


다들 잘생겼네요


사실 ENHYPHEN(이하 엔하이픈)은 2020년 11월 30일 데뷔라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보통 12월이 넘어가면 당해연도 데뷔로 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애매한 11월 30일이라니...

신인상도 작년에 받았어요. 그니까 사실 신인은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이 글의 제목을 뉴페이스... 라는 애매한 호칭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엔하이픈이 4세대의 초대형 그룹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에요. 현재는 서바이벌 데뷔 아이돌답게(하이브과 엠넷과 함께 기획한 '아이랜드'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해외 인기가 더 많은데, 해외에서만 반응이 오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도 코어부터 팬덤이 형성되는 모양이 심상치 않고, 결정적으로 음악과 퍼포먼스가 훌륭합니다. 멤버들이 아무리 매력 있고 수행력이 좋아도 음악과 퍼포먼스의 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눈이 높아진 케이팝 팬들을 만족시킬 수 없거든요.


엔하이픈의 데뷔 앨범인 <BORDER : DAY ONE>도 좋게 들었었지만,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잘 안 왔던 것 같아요. 각 멤버 목소리의 개성을 납작하게 누르는 믹싱도 익숙지 않았고, 타이틀곡 'Given-Taken'의 콘셉이 앳된 소년들에게 약간 무거워 보였거든요. 그 이질감을 노렸던 것일 수도 있지만, 생동하는 에너지가 단단한 콘셉에 잡혀있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 여담이지만 방시혁 프로듀서의 소년관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수만 프로듀서와 방시혁 프로듀서의 소년관에 대한 비교분석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늘 있습니다.

그리고 회색 글씨는 tmi입니다. 바쁘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2021년 4월 선보인 미니 2집, <BORDER : CARNIVAL>은 정말 충격적으로 좋았습니다.

https://youtu.be/Fc7-Oe0tj5k

뱀파이어 콘셉트 맞습니다. 근데 구체적인 세계관은 저도 잘 모릅니다... 공부해볼게요

와,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 타이틀인 'Drunk-Dazed'는 제목 그대로 어질어질하고 화려한 사운드 위에 엔하이픈 멤버들의 까슬한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앳된 느낌이 있지만 어설프지는 않게 보컬이 음악에 잘 올라타 있습니다. 귀를 잡아끄는 리더 정원의 도입부가 인상적입니다. 데뷔 앨범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들렸던, 오토튠을 입힌 것 같은 보컬 믹싱도 곡의 환각적 이미지와 잘 어우러집니다.


 ✳︎ 케이팝, 그중에서도 아이돌팝은 곡에서 개인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돌이라는 것은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데모곡들과 실제 발매된 곡들을 비교하며 들어보면, 케이팝으로 완성된 곡들에서 목소리가 훨씬 더 앞으로 나와있는 감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르는 인물들이 잘 구분되고, 계속 바뀌고요. 그런데 엔하이픈의 곡들은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팬이 아니라면 목소리를 구분하기가 퍽 어려워요. 처음 들었을 때는 거의 한 사람이 부르는 것 같다고 느껴져 좀 당황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케이팝은 보통 주목하는 인물이 휙휙 바뀌는 것이 특징이니까요. 그런데 구분하려 애쓰지 않고 '그냥 듣기에'는 또 괜찮습니다(그리고 어차피 팬들은 다 구분합니다ㅋㅋ). 보컬 이외의 사운드가 강해서 심심하지 않아요. 케이팝을 음악 장르로써 즐기는 분들에게는 더욱 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해외 리스너들을 공략한 것 같기도 하고요. 각 회사마다 만드는 소리의 취향이 있는 거겠죠. 믹싱도 믹싱이지만, 내는 목소리들부터 다릅니다. 애초에 보컬 자리를 위해 구해오는 소리도 다르고, 트레이닝의 지향점도 다르니까요. 하이브는 aka.실음보컬을 지향하는 것 같진 않고, 얇은 소리를 쌓아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얘기는 또 나중에 할 일이 있을 겁니다. 왜냐면 제가 좋아하는 얘기니까요...


하이브의 색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특히나 2021년 눈에 띄게 가져가는 emo락의 감성, 그리고 BTS부터 이어져오는 머리까지 탈탈 터는 에너제틱한 퍼포먼스까지!  하이브는 현재 업계에서의 입지나 인지도에 비해 역사가 짧고 소속팀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M이나 JYP, YG에 비해 대중이 인지하는 고유의 색이 선명하지는 않죠. 우리는 'SM스럽다', 'YG답다', '완전 JYP같다'와 같은 표현에는 익숙하지만 '하이브스럽다', 혹은 '빅히트스럽다'라는 표현에는 정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잖아요. 아마도 특징을 찾아낼 만큼의 레퍼런스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하이브스러움'인지 '방탄스러움'인지 구분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곧 대중들도 '하이브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이브가 음악적인 방향성을 찾기 위해 2021년 부단히 노력했고, 세븐틴 등 소속사 인수합병을 통해 식구가 된 그룹들에게서도 그런 영향을 찾아볼 수 있었거든요. 2022년 하이브와 엔하이픈의 행방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엔하이픈이라는 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엔하이픈은 마치 빅데이터로부터 태어난 소년들 같습니다.


aespa와 블랙맘바를 아시죠?  'ae-카리나', 'ae-윈터'같은 에스파의 멤버들(에스파는... 8인조입니다)의 이름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aespa 세계관에서 ae들은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에 남긴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집니다. 엔하이픈은 비유를 하자면, 마치 ae-청소년 같습니다. 한 번의 데이터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가상의 청소년이요. (마치 어플로 보정된 것 같은 멋진 외모도요)


특히나 세계관을 담아내는 타이틀보다는 수록곡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곡에서 '요즘 말'이나 '요즘 감성'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태민, NCT, TXT 등의 크레딧에서도 자주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작사팀 'danke'와의 합이 좋습니다. 자신과 다른 시대의 인물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인물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어렵고요.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은 또 가장 어렵겠죠. 어른들이 아이들을 나이브하게 흉내 내어 쓴 가사들이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danke팀의 가사를 참 좋아합니다. 불완전한 소년기의 아름다움을 잘 캐치하고, 그걸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묘사하고, 묘사하는 과정에서 종종 섞이는 트렌디한 단어들이 웃음을 짓게 만들거든요.

(멜론에서 danke 팀의 참여곡 몇 개를 긁어와 봤습니다. TXT의 곡은 공동작사가 많아 어느 부분에 참여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가사를 쓰는 팀인지 궁금하시다면 CIX의 <CIX 1st Album 'OK' Prologue : Be OK> 앨범을 추천해요.)



엔하이픈에 곡에는 또한 '돈'의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용돈을 모아 비트코인 하는 요즘 청소년 같지 않나요?

(저는 초중고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자주 있는데, 주변에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하는 친구들이 꽤나 있습니다. 남중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친구는 심지어 '애들 다 한다'라고 말했어요. 충격받았음...).

너와의 사랑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다는  'Not for sale', 한탕주의 감성을 표현한 '모 아니면 도', 부촌을 동경하는 소년들의 마음을 담은 'Upper Side Dreamin'' 등의 수록곡에서 나타나는 생각들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런 '진짜 최신 감성'의 재현은 하이브가 시장 조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놈의 'MZ'로 퉁치지 않고 진짜 Z세대를 표현해냅니다. (근데 사실 'Upper Side Dreamin''은 약간 기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같기도 하고...)


✳︎ 재밌는 건, TXT도 동시대 청소년들의 모습을 입고 있지만 재현된 포인트가 엔하이픈과 좀 다릅니다. TXT는 좀 더 사춘기의 방황, 반항을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좀 흑염룡... 그런 느낌이기도 한데요, 그게 아주 매력적입니다.

길티플레저도 플레저다


https://youtu.be/VT_MhG67byU

어우 제가 다 숨이 찹니다...

추천 영상 하나. 하이브의 특유의 빡센 퍼포먼스 + 요즘 세대의 감성이 가득 담긴 가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모 아니면 도' 직캠입니다. 후반 댄스 브레이크가 멋집니다. 메인 댄서로 알고 있는 막내 니키의 능숙한 테크닉이 퍼포먼스의 퀄리티를 한층 올립니다(도입부 센터, 금발 멤버). 그런 면에서 NCT의 쇼타로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도 한 번 저렇게 몸을 움직여 봤으면...




급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가장 최근 발매된 정규 1집 리패키지 앨범인 <DIMENSION : ANSWER>의 수록곡 'Polaroid Love'가 틱톡과 유튜브 릴스 등 숏폼 콘텐츠에 널리 활용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TXT의 'Anti-Romantic', NCT DREAM의 '오르골(Life Is Still Going On)' 등이 비슷한 루트로 흥행했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 적절한 쉬운 멜로디와 달콤한 가사, '폴라로이드'라는 ~성~ 가득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상은 숏폼 콘텐츠를 구상하기 너무 좋죠. 또 90's 아날로그 감성이 유행하는 지금, 주제 면에서 너무나 시의적절합니다. 하이브 짜증날만큼 시장 공략을 잘해요. 아마 엔하이픈이라는 팀은 잘 몰라도, 'Polaroid Love'를 아는 사람은 꽤 많아졌을 겁니다.

+ 발행 후, 글 링크를 보내준 친구에게 "아 폴라럽이 엔하이픈 노래였어?" 라는 예측과 맞아떨어진 피드백을 받았습니다ㅋㅋ

https://youtu.be/FTKSHe9cm-A

사랑 촌스런 그 감정~ '촌스런'이라는 단어 선정도 좋죠? ㅋㅋㅋ


케이팝의 메인 소비층이라 할 수 있는 10대 후반~20대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름이 자주 오고 가면, 불꽃처럼 인기가 번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충격적으로 매력적인 콘셉 하나만 터지면 순식간입니다. 하이브와 빌리프랩은 그걸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고요. 그래서 아마 잘 될 겁니다. 하늘만 도우면요.


결론은!

2022년,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할만한 팀이라는 겁니다.


뒤늦게 발견해서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덕질하는 것도 좋지만, 원석 같은 팀들이 보석이 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제 글이 엔하이픈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뉴페이스' 2편에 해당하는 다음 글에서는 신인 걸그룹 한 팀을 소개하겠습니다.

부디 분량 조절에 성공하기를


아, 어떤 이야기도 좋으니 댓글 환영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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