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건축회사, 매니저가 휴가를 떠났다 (1)

이민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회사

by 구워홀러

프로젝트 매니저가 가족 행사로 겸사겸사 2주 휴가를 떠났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회사 임원으로 오래전 밴쿠버에서 켈로나라는 BC주 내 소도시로 이사한 뒤 줄곧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 관련 전달 사항은 회사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진다. 메신저를 통해서만 대화를 하기 때문에 부족할 수 있는 의사소통을 보완하기 위해 매주 화상 회의로 팀 회의 (Internal Meeting)를 하고 있으며, 급하게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별도의 화상회의를 잡기도 한다.

WC Studio Architects

이 프로젝트의 Stage는 시청에 제출할 Building Permit 도면을 90% 완료한 상황이었지만, 최근 시청으로부터 전달받은 Development Permit에 대한 검토를 우리 회사와 건축주가 확인 중이었다. (위 도표에서 DD에 해당) 그렇기 때문에 Building Permit은 조금 미뤄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현장에서는 입찰용 도면 IFT를 빨리 제출해 달라는 재촉 중이었다. (위 단계에서 CD에 해당) 현장 소장은 건축 설계 회사가 발행한 입찰 도면을 통해 프로젝트의 예산 확인과 Sub Contractor (하청 업체)들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수록 이 정보를 얻길 원한다.


이것만을 제외한다면, 프로젝트는 전체적으로 순항 중이었기 때문에 내 매니저는 장기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또한 먼 곳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가족 행사 외에는 집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므로, 틈틈이 프로젝트 이메일을 확인할 것이며 급한 사항이 있다면 개인 메시지를 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매니저는 나와 동료들에게 끝마쳐져야 할 업무 리스트를 남기고 휴가를 떠났다.




• 그가 휴가를 떠난 첫째 날


(중략)...ㅁㅁ(내 매니저) is away, so ㅇㅇ(나) seems to take the helm.
...(중략)

현장 Construction Manager로부터 건축 설계 회사 쪽 매니저가 휴가 부재중 내가 프로젝트를 맡을 것이라는(?) 전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리고 연이어 그의 이메일들이 쏟아졌다.


Please issue ㅇㅇㅇ asap.
Please issue ㅁㅁㅁ asap.


ㅇㅇㅇ와 ㅁㅁㅁ의 Site Instruction을 가능한 한 빨리 제출해 달라는 것. SI는 CA 업무 중 하나로, 건축가 또는 각 분야 엔지니어들이 현장 건설 중 자신 책임하에 있는 아이템들에 지시를 내리며 추가 설명을 덧붙이는 문서이다.


나는 줄곧 프로젝트의 CA 전체를 끝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2년 전 즈음 이직 직전의 회사에서 맡았던 프로젝트가 시공 단계 (Construction Phase)로 막 들어갔었다. 그때 마침 했던 업무가 SI 발행이었는데, 전 회사 매니저인 S가 당시 내 서명과 함께 발행한 SI를 '나의 Baby'라고 했었으리만큼 그때 기억은 또렷했다.


또한 매니저가 일찍이 현장으로 제출한 몇 건의 SI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당장 필요한 SI 서류 작업을 마쳤다. 업무는 어렵지 않았지만, 회사 외부로 나가는 문서였기 때문에 휴가 중인 매니저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내가 작성한 두 SI를 검토한 매니저는 이대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단, 사장의 직인 (Seal)을 받고 현장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내 매니저는 AIBC 공인 건축가였지만, 이 프로젝트는 그의 이름이 아닌 사장의 이름으로 나갔기 때문이었다.


사장에게 Seal이 필요한 두 문서가 있음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 업무를 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공식 서류는 완성이 되었다.


2주간 홀로 일하기 신고식을 나름 잘 치렀다.


• 그가 휴가를 떠난 둘째 날


Please issue the Shop Drawing review asap.

현장으로부터 Civil Engineer의 Shop Drawing 검토에 대한 결과물을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는 이메일이 도착하였다. 문제는 우리 쪽에서 아무리 재촉을 하여도 Civil Engineer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아 며칠째 손 놓고 있었다는 것. 그 담당자는 비슷한 건에 대한 검토가 신속하지 않았는데, 그의 업무량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고 건축주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장으로부터 온 이번 요청에 나는 다른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같은 날 현장으로부터 건축 도면에 대한 항의 이메일이 들어왔다. 내 매니저는 현장의 이메일이 매우 성가셨는지 건축주에게 이 항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확인 이메일을 즉시 보냈다. 건축주도 건축 도면을 리뷰한 뒤 우리 매니저의 손을 들어주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항의 이메일을 두고, 현장의 요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면서 그들이 원하는 리스트대로 우리 쪽에서 다시 도면 작업을 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매니저의 빠른 판단으로 수고로움을 던 셈이었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짬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건축 회사인 우리가 발행한 도면과 그에 대한 QC가 옳았다면, 상대방의 트집(?)에는 당당히 맞받아쳐야 한다.


• 그가 휴가를 떠난 넷째 날


아침 두 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 캐나다 로컬 건축 회사에서 일한 지 곧 만 7년째가 될 예정인데 이중 전화 사용한 횟수는 10회를 넘지 못했다.


전화벨이 울려 떨리는 마음으르 수화기를 들었지만, 최대한 당당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한 전화는 어떤 하청 업체 (Sub Contractor)였는데, 현재 맡은 프로젝트 공식 이름을 언급하며 현장 소장의 연락처를 질문해 왔다. 이런 전화는 처음 받아보았고, 현장 소장의 연락처를 바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전화를 건 그에게는 소장에게 확인을 구하겠다고 전하며 그의 업무용 이메일을 나에게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다른 하나는 건축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요청은 현재 시급한 아이템으로 도면을 측량기사 (Surveyor)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 시간 전 나에게 Urgent Email을 보냈다고 했지만, 내가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이메일이 들어온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더니, 이상하다며 내 이메일 주소를 재확인 후 다시 나에게 이메일 했지만, 여전히 이메일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매우 급한 건이라며, 전화로 Surveyor의 이메일을 불러주었다. 메모를 받아 적고 확인을 위해 내가 다시 한번 이메일 주소를 읊었고, 즉시 건축주의 요구를 이행하였다.


그날 오후 회사 IT 매니저로부터 MS Outlook에서 시스템적으로 걸러진 외부 이메일을 전달해 주었다. 건축주 이메일 안에 첨부 파일이 문제가 있던 것이었다. 즉시 건축주에게 당일 오전 그의 Urgent Email을 받지 못한 사유를 설명했다. 아침의 일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나는 내 책임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고,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양측 간 대비하고 싶었다.


• 그가 휴가를 떠난 다섯째 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상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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