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건축 설계 회사 직장인의 정체성은?!

이민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회사

by 구워홀러

나는 캐나다 로컬 건축 디자인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내 직업 타이틀은 Technologist (테크놀로지스트).


캐나다에서 테크놀로지스트가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기술학교 또는 전문대학에서 1년 또는 2년의 과정을 마치면 된다. 그리고 BC주 건축 협회의 공식 회원이 되면 테크놀로지스트이란 타이틀 앞에 Architectural이란 별도 명칭을 추가할 수 있다. 공식 회원이 되려면 디플로마 (2년 학위)와 실무 경력 만 2년이 필수이지만, 건축 설계회사에서 일하는데 Architectural 타이틀이 필수 요건은 아니다.




나의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은 전부 대학 입시용 국영수에만 몰두하였다.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미술과 음악 시간은 자습시간이었기 때문에 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재료를 직접 손으로 만지는 등의 시간은 거친 적은 전혀 없다.


스물다섯 살 우연한 계기로 캐나다에 오게 되었고, ‘재밌을 것 같다’는 막연한 의식의 흐름과 호기심으로 건축 기술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졸업 후 찾은 건축 설계 회사는 나를 밴쿠버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취업은 하였지만, 건축을 순수 학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디자인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은 여전히 있다. 최근에는 용기를 내어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디자인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에게 설계 의도에 대해 틈틈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질문을 한다.


건축 디자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나만의 다른 방법은 관련 서적 독서와 미술관 방문하는 것이다. 독서는 간접 경험의 끝판왕으로, 10-30년 경력을 가진 건축가들의 생생한 경험과 생각•노하우를 200-300 페이지에서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건축 비평가의 책들도 비슷하다. 더욱이 역사에 업적을 남긴 레전드 건축가들을 비판 (또는 힐난)은 4년제 대학 강의에서는 듣기 힘들 것이다.

연달아 읽은 책에서 특정 레전드 건축가를 비판과 힐난했었다. 단, ‘책 한 권 읽은 자가 무섭다.’라는 말처럼 이 두 권의 책만으로 그 레전드 건축가를 판단하지는 않으려 한다.


밴쿠버 미술관의 연간 회원료는 60불 정도이다.

미술관을 찾는 것은 건축에 대한 직접적인 공부는 아니지만, 엄선된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을 감상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아직까지는 ‘감상’이라기보다는 무턱대고 전시회를 찾아 (억지로) 작품 앞에 나를 노출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던 중 이번 오타니 시게루 전시회 Monster in my Head에서 아래의 작품과 작가의 친필 메모에 감명을 받았는데, 아래와 같다.

Otani Shigeru, Monster in my Head 전시회
We can communicate through the things we make.


간결하지만, 강력한 문장이었다.


작가는 초년 시절 이집트 답사 때 본 완벽한 조각 예술을 통해 ‘그 조각가가 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 작품을 통해 과거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여담으로 같은 작품을 본 배우자는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3D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이다.)

Otani Shigeru, Monster in my Head 전시회
그의 작품에 작가의 철학을 대입하여, 작품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이 과정은 과거에 작업하는 그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내가 만 5년 근무했던 건축 회사는 사장들이 고층 주상복합을 위주로 프로젝트들을 따왔다. 사장 S는 우리 회사가 밴쿠버 로컬 탑 3이라고 자신할 만큼, 광역 밴쿠버 전역 역세권 지역과 신도시에는 이 회사의 타워들이 즐비하다.

밴쿠버 다운타운 사진으로 전 회사 프로젝트와는 무관

친한 친구는 그 회사를 두고 ‘Highrise (고층빌딩)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별명 붙여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프로젝트의 디자인적 의도를 들은 적이 없으며, 클라이언트들이 우리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들의 요구를 척척 들어주고, 일처리가 빠르며, 인건비(?) 또한 다른 회사들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라 들었다.


건축물은 지구상 인간이 만든 가장 큰 물건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해관계들이 얽혀있고, 건축은 사용자와 이해관계당사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대중들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프로젝트의 예술적 영향력이 있다면, 다른 지역 사회의 ‘무관한’ 대중들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들을 ‘관광객’이라 칭한다.)

Heatherwick, T. Humanize (2023), P84




그렇다면 나는 건축 디자인 회사 종사자로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건축을 접근해야 할까?


나의 캐나다의 공식적인 직함은 Technologist이지만, 지금부터 마음가짐을 고치기로 했다. 현재 맡은 프로젝트들에 대해 사무적인 일처리를 한다기보다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주는 거대한 물건을 만드는 Maker적 관점을 탑재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들은 대중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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