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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Feb 19. 2023

걷기만 해도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게 있다.


  오히려 선명해지는 기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파리를 여행하며 재밌는 것들을 이것 저것 해보았다. 이를테면 파리 생제르맹의 축구 경기를 봤다던가(그렇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아쉽게 준우승한 프랑스의 음바페와 우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브라질의 네이마르가 속한 바로 그 팀) 에펠탑에서 눈부신 일출과 그림같은 노을을 봤다던가 세상에서 제일 맛나는 크로아상을 직접 만들어봤다던가 하는 식이다. 세계 4대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롤랑가로스 투어를 하고 파리에서 테니스를 3번이나 치고 15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이 깃든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뛸리히 공원 분수대 곁에 앉아 따사로운 햇빛을 안으며 현지인처럼 점심을 먹기도 했다.


  파리의 주요 명소도 대부분 다 가보았다. 유리 피라미드 아래 세계적인 명작 모나리자를 품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부터 모네의 수련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오랑주리 미술관하며 고흐, 마네, 밀레 등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오르세 미술관은 어떠한가? 독특한 외관에 난해한(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다) 현대미술을 가득 담고 있는 퐁피두 미술관도 가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리모델링한 피노 컬렉션도 둘러보고 모네와 미첼의 특별 전시를 하던 루이비통 파운데이션도 거닐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로댕박물관도 보고 화려한 장식과 엄청난 규모의 정원을 품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도 가보았다. 수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득한 생 샤펠 성당도 멋진 외관을 뽐내는 노트르담 성당도 16세기에 지어졌다는 생제르맹 성당도 들여다보았다.



뿐만 아니라 에펠탑을 시작으로 앵발리드, 알렉산드로 3세 다리, 쁘띠 팔레, 콩코드 광장, 샹제리제 거리, 개선문, 뤽상부르 공원, 팡테온, 오페라 가르니에, 코메디 프랑세즈, 갤러리 비비엔 등등 하나하나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녔다.


  파리의 거의 모든 교통 수단도 다 이용해보았다. 지하철은 기본이고 버스도 타고 기차도 자가용도 타고 트램도 탔다. 바토무슈라고 불리우는 유람선도 타고 심지어 자전거까지 타고 말았다.


  하나 같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고 한결 같이 즐겁지 않은 경험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파리에서나 파리를 떠나 온 지금이나 여전히 그 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걷는 것.  


  파리라는 도시를 걷는게 가장 좋았다. 여행의 첫 날, 시민혁명의 나라답게도 교통 파업이 대대적으로 있었다. 대부분의 지하철 노선이 운영하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 외에는 역이 폐쇄됐다. 운영되는 지하철 노선도 주요 역은 정차하지 않았다.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 어쩔 수 없이 걷고 또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가고 싶었던 곳을 못가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정을 상당 부분 취소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만 몇 군데 가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뗐다. 한걸음 두걸음 발길을 옮길때마다 아쉬움이 하나 둘 연기처럼 사라져가는게 느껴졌다. 걸음 걸음마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거렸다. 보드라운 햇살이 일렁거렸다. 청아하고 푸른 빛의 하늘이 닿을 것만 같았다.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아름다운 것 투성이었다. 예술가의 도시답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그 자리에 두어진 것이 없었다. 발에 차이는 작은 돌마저도 파리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하나의 예술적 요소였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의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보다가도 마음이 자꾸 급해졌다. 오르세에서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다가도 조바심이 났다. 오랑주리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듯 싶었다. 그저 얼른 밖으로 나가 걷고 싶었다. 어느 하나 멋지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파리 시내를 그저 걷는 것,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파리에서 돌아온지 한 달여가 지났다. 어느 것이나 시간이 흐르면 잊혀져간다. 흩어버리고 싶지 않은 파리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조금씩 흐려져 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오히려 선명해지는 기억이 존재한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아직도 그 무드가 느껴진다. 파리를 걷던 그 시간이 또렷하게 남았다.


  그저 좋았다.


  걷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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