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담당자와는 두어 달 남짓 후면 벌써 한 팀이 된 지도 꼬박 9년이다. 처음 봤을 땐 서로 같은 팀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이로 따져봐도 7살 차이인 데다 나는 그 유명난 '빠른' 년생이었기 때문에 학번으로 따지자면 8학번 차이가 났다. 그만큼의 차이라는 건 런던 담당자가 초등학생 때 얼굴도 모르는 군인 아저씨를 위해 마지못해 쓴 위문편지의 수신인이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우린 쉽게 친해졌다.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흐려져서인지 이것 때문이다랄만한게 떠오르지 않는다. 마침 런던 담당자가 지나가길래 세워 물으니 본인도 잘 모르겠단다. 우리가 친해진 이유를 모르긴 몰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어느 틈엔가 런던 담당자와 같은 팀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났는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왜 있지 않은가? 친한 사이일수록 같은 팀을 한다는 게 외려 더 조심스러운 거. 내 맘과는 다르게 런던 담당자는 같은 팀이 되는 게 부담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티를 냈다가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친한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고. 같은 팀이 영영 되지 못할지언정 고운 우정마저 때를 묻히긴 싫었다랄까?
늘 그렇듯 마음처럼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같은 팀이 되고 싶었다. 아니 점점 더 그 마음이 커지기만 했다. 꽤나 죽이 잘 맞는 사이였으므로 한 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럴수록 조심스러운 마음도 덩달아 커졌다. 단단한 우정에 티 하나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몸을 사렸다. 그런 태가 나지 않게 에둘러 평소보다 조금 더 잘해주는 방법으로 대신했다. 이를 테면 나는 쓸 일이 없어진 영화표(혼자 영화 보기가 취미였음)를 준다던가 쓸 일이 없는 기프티콘(그런 기프티콘은 있을 리 만무함)을 준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연락을 조금 더 자주 하기 위해 매일 운동하고 사진을 찍어 인증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같은 팀이 되고 싶으나 같은 팀이 되려다 멀어지느니 조금 더 친밀해지는 쪽을 택했다고 해야 하나.
런던 담당자가 내 속내를 알 수 없었으나 주위에선 하나 둘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극구 부인했지만 이게 다 티가 났나 보다. 어느새 런던 담당자만 모르고 세상이 다 아는 일이 되어버렸다. 일이 꼬이면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런던 담당자가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나를 멀리하더니 급기야 제주도로 떠났다.
견고했던 우정이 그렇게 쉽사리 깨질리는 없었다. 이내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고 제주도에 놀러 오면 가이드를 해준다 했다. 그렇게 제주로 향했다. 11월의 제주는 아직 가을이 한창이었고 때때로 늦여름 같기도 했다. 한라산을 가자기에 함께 올랐다. 서울뜨기 둘은 11월의 한라산을 너무 띄엄띄엄 본거였다. 처음엔 분명 가을이었는데 오를수록 겨울이 찾아왔다. 급기야 눈이 내리더니만 온통이 겨울왕국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등산화에 아이젠을 찼는데 우리 둘만 운동화차림이었다. 빙판길이 된 등산로.. 런던 담당자가 몇 번이나 크게 넘어질 뻔했다.
그녀가 말했다.
"손 좀 잡아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