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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Sep 15. 2023

런던 담당자(2)



  “손 좀 잡아 줄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수많은 물음표가 순식간에 돋아났다. 알 수 없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눈 덮인 등산로는 수없는 발자국들로 단단해져만 가는데 내 마음은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이내, 


  두 손이 맞닿았다.  



  '쿵쿵'


   무슨 소리가 자꾸만 들렸다. 



  '쿵쿵'


  매우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



  '쿵쿵'


  설마 눈사태가 나려나…?



  '쿵쿵' 


  내 심장이 나대는 소리였다. 


  무너져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마음사태였다. 


  비상.. 사태였다. 



  스스로가 정한 이번 여행의 목적은 마음 정리였다. 제주는 외사랑의 종착지로 삼기에 충분히 애틋했으므로 맞춤이었다. 삐끗대던 관계가 제자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시간일 터였다. 그게 내 계획의 전부였다. 


  역시나 인생이 계획대로 될리 없지. 정리를 소원하던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두 손이 하나가 되어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그녀가 미끄러져 넘어지려 할 때마다 잡은 손을 더 단단히했다. 눈길이미끄러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그녀를 있는 힘껏 잡아 구해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말해두었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까 은혜 꼭 갚아" 


  장난처럼 던지는 말 뒤에 후일을 도모하고픈 마음을 담았는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목숨을 구하고 난 뒤 가까스로 한라산 정상에 다달았다. 삼 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 백록담은 궃은 날씨로 보지 못했지만 백록담을 보려고 한라산을 오른게 아니라 별로 아쉽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내 보고 있었으므로 내내 좋았기도 때때로 애틋하기도 했다. 


  다시 하산길에 올랐다. 잠시 떼었던 손을 마주 잡았다. 겨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겨울이 끝나면 잡은 손을 놓아주어야 하므로 길고 긴 겨울을 영원히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람과는 다르게 그칠 줄 모르던 눈이 잦아들었다. 온통 하얗던 세상이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다시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가을이 성큼 성큼 다가옴과 동시에 손을 계속 잡아야만 하는 명분은 성큼 성큼 사라져만 갔다. 


  “이젠 길이 안미끄러워서 다행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 동시에 손을 놓아주었다. 하나도 다행일리 없었다. 


  여행의 목적이 산으로 가버렸다. 괜히 산을 올랐던 걸까? 마음은 외려 더 뒤죽박죽이었다.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정리가 되지 않는 내 마음도 알 수 없었고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날이 참 좋았더랬다. 육지였더라면 쌀쌀한 기운이 제법 느껴질 11월 하순이었는데도 제주는 따사롭기만 했다. 한 번 요동친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인지 자꾸만 두둥실 떠오르곤 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해보아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녀와 어디 어디를 갔었는데 그 어디가 어디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날의 마음은 자꾸만 두둥실 떠올라서 내내 설레었다라는 것. 자꾸만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부풀대로 부풀어 오르도록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이대로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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