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에 따라 말하는 방탈출의 재미
“하.. 정말 스트레스받아. 술이나 마시자.”
“그래 거기로 모여.”
첫 회사를 다니던 신입사원 시절,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열받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엄청나게 씹었다. 취하는 순간은 재미있다. 알딸딸한 기분이 욕하는 맛을 돋운다. 짠! 하면서 잔을 부딪히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 같다. 30대가 되자 술로 스트레스를 풀면 그다음 날이 힘들었다. 위와 장에도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얼굴에 뾰루지도 나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도 느껴졌다. 밤새 술을 마시며 욕을 한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었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은 다음날도 똑같았다. 짠! 하고 술잔과 함께 욕을 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가서 쨍! 하고 부딪히며 대화를 하는 게 낫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는 것을 알았지만 술로 푸는 건 부작용이 있음을 깨달았다.
30대에 들어서는 요가, 필라테스에 빠졌다. 운동을 하고 나니 잠이 잘 왔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았다. 일을 하며 운동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체력도 길러지고 정신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일은 하나의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가기 싫다 산'이다. 운동이 좋은 것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은 다짐만으로 넘을 수 없는 산이다.
술은 부작용이 두렵고, 운동은 일어나서 나가기까지가 너무 힘든 취미다. 하지만 방탈출은 가는 길마저 즐거운 취미다. 누가 방탈출을 하자고 제안하면 금세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떠올려보면 운동, 술, 방탈출 말고도 수많은 취미들이 내 인생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들 모두 내 시간을 뺏고자 경쟁했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결과 방탈출이 승리했다. 방탈출이 취미들 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뭘까? 찐 회사원인 나는 취미 전쟁에서 0순위가 된 방탈출의 매력을 육하원칙에 따라 분석해 봤다.
방탈출 언제 할까? 삶이 무기력하거나, 일상에 힘든 일이 많을 때 그럴 때 방탈출을 하면 더 즐겁다. 방탈출은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준다. 회사가 괴롭고, 인간관계에 힘들 때 한 시간 동안 도피를 해보자. 낯선 세계에서 낯선 존재가 되어보자. 문제와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 세상이 잊혀진다. 그래서 일상도피가 필요한 분들께는 더욱 추천한다. 문제를 풀다 보면 인생의 문제에 사로잡힐 틈이 없다. 시간적으로 언제 가는 게 좋은지도 떠올려보면, 주말에 하루 날을 잡고 연방*을 하며 몇 회씩 방탈출을 즐기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퇴근 후 짬을 내서 한 테마씩 해도 즐겁다. 금요일 밤에 방탈출을 하고, 함께한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며 그날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한 주의 마무리가 알차다. 쓰고 보니 삶이 힘들수록 더 재미있는 취미다.
*연방: 방탈출을 여러 번 하는 것을 의미함. 하루에 2번 연달아 방탈출을 하면 2연방, 3번하면 3연방으로 표현함
방탈출 어디에서 할까? 날씨가 좋은 날은 야외 테마도 괜찮다. 방탈출은 야외테마, 실내 테마가 나뉘어 있다. 야외테마가 있는 경우 야외라고 표기를 해 둔다. 야외 테마는 도심이나 외곽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문제를 푼다. 게임을 하다 보면 주변의 간판과 지형지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게 느껴진다. 야외테마를 한 번 다녀오면, 그 뒤로 그곳을 지나치는 게 특별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실내 테마가 더욱 감사하다. 날이 좋은 날 야외테마를 하면 색다른 즐거움이 느껴진다. 실내 방탈출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형의 구분이 아닌 위치로 구분을 한다면 서울에서는 강.건.홍이 방탈출의 성지다. 강남, 건대, 홍대의 약자이다. 이쪽에 방탈출이 몰려있다. 전부 핫한 플레이스이기에 약속을 잡기에 아주 좋다. 친구와 이 근처에서 약속이 잡혔다면 방탈출을 살짝 끼워넣으면 더 좋다. 결국 방탈출은 실내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야외 게임도 가능하며, 강건홍 핫플에 많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방탈출 누구와 할까? 같은 테마도 누구와 하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친한 사람들과 갈 경우 부끄러운 미션도 깔깔대며 할 수 있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가면 게임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보다 못 푸는 친구들과 함께 가면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푼다. 그래서 내 실력이 향상된 기분을 느낀다. 비매너인 동료들도 있다. 자기 혼자 문제를 풀어버리거나, 몰입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누가 나와 맞지 않는지 생각해 보고, 잘 맞는 사람과 방탈출을 하러 가자. 방탈출은 게임내의 내용이 무엇인지 스포일러를 해서는 안된다. 게임을 하기 전 비밀서약유지서도 쓴다. 때문에 게임을 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 할 거리가 생긴다. 방탈출을 한 사람과 생기는 특별한 일들은 소중한 추억이다. 잘 맞는 사람들과 가면 더 재미있지만, 누구와 가도 이야기 거리는 생긴다.
방탈출 무엇을 할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다. 어떤 장르를 하냐이다. 방탈출에는 감성, 공포, SF, 로맨스, 우주, 일상, 게임, 아케이드, 판타지, 동화, 성인 기타 등등 수많은 장르가 있다. 방탈출의 포스터와 스토리, 그리고 테마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 테마의 장르가 무엇이냐에 따라 몰입과 흥미가 달라진다. 방탈출의 횟수가 쌓이다 보면 본인이 무슨 테마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연출이 흥미롭고, 스토리가 감성적인 테마를 좋아한다. 반대로 친구는 스릴러와 잠입 장르를 좋아한다. 공포 테마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무슨 장르를 좋아하냐에 따라 흥미도도 달라진다. 하다 보면 자기 취향을 알 수 있다.
방탈출 어떻게 할까? 그 테마가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어떻게 풀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방탈출을 하며, 흥미로운 문제도 기억에 남지만 ‘내가 푼 문제’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얼마나 잘 풀어나가는지, 어떻게 협동심을 발휘하는지, 해결을 어떻게 하는지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공포 테마 같은 경우에는 쫄과 탱의 역할이 있다. 쫄은 잘 쫄고 겁이 많은 사람을 쫄이라고 한다. 탱 같은 경우 탱커의 의미로 대범하고 겁이 없는 사람을 탱이라고 한다. 공포 방탈출을 해보면 내가 쫄인지 탱인지 알 수 있다. 방을 나와서 떠올려 보면,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는지, 내가 어떻게 했을 때 잘했는지를 복기해 보는 것도 재미다.
방탈출 왜 할까? 왜 하필 방탈출을 하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육하원칙의 끝인 여기까지 왔다. 우선 가장 큰 요소는 재미다.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재미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방탈출 스토리에 몰입을 하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흥미진진하다. 잠깐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색다른 연출에 감동한다. 방탈출이 주는 많은 이점도 있고, 방탈출로 성장했다는 기분도 느낀다. 하지만 재미있음이 아직 가장 큰 이유이다.
내가 방탈출을 했던 그룹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그 세가지 그룹과 방탈출을 할 때마다 느끼는 흥미가 달라서, 그룹마다의 즐거움도 육하원칙에 따라 적어보았다.
1.성장형 방탈출 (비슷한 사람끼리 갔을 때)
방탈출에 함께 입문한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셋 다 방탈출을 함께 시작해서 그 매력에 빠졌다. 셋 다 방탈출을 잘 하지 못해서 쉬운 방탈출을 위주로 했다. (누가) 셋의 집 인근인 건대입구에서 만나 한 달에 한번 만나서 한 개씩 테마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언제-어디서) 이들과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라서 하면서 서로 추억이 쌓이는 느낌이 좋았다. (어떻게) 한 명은 스릴러 테마를 좋아했고, 나는 감성 테마를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씩 서로 하고 싶은 테마를 했다. (무엇을) 동창들과는 서로 성장해가며 방탈출을 하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왜)
2. 버스형 방탈출 (더 잘하는 이와 갔을 때)
나보다 방탈출을 훨씬 많이 한 고수들과 방탈출을 하기도 한다. (누가) 100방정도 한 친구가 동료라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주말에 몰아서 연방을 한다.(언제) 고수 친구는 예약실력도 뛰어나서 일명 꽃길*이라고 불리는 유명 테마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어디서) 그러다보니 잘하는 이들의 문제 풀이에 얹혀가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테마의 인테리어나 멋진 연출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을)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남들이 문제를 어떻게 잘 푸는지 관전하며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더 잘하는 사람과 함께 했을 때는 유명 테마만의 연출과 고수의 실력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왜)
*꽃길: 방탈출 테마를 평가하는 표현. 테마의 완성도와 재미에 따라 흙길-풀길-꽃길-꽃발길 등으로 표현하며 평가가 낮으면 흙길, 높으면 꽃길로 표현함.
3. 영업용 방탈출 (경험이 없는 사람끼리 갔을 때)
나보다 방탈출을 좀 더 못하는 친구나, 처음 하는 친구와 방탈출을 할 때가 있다. (누가) 처음하는 친구와는 다른 약속을 잡았다가 방탈출을 해보자고 슬쩍 영업하는 경우가 있다. (언제) 그럴때는 좀 더 쉽고 재미있으면서 앞으로 그 친구가 계속 방탈출을 할 동력이 될 수 있는 테마들을 찾는다. (어디서) 그 친구의 취향에 맞추어 공포나 감성 테마를 물어보고 신중하게 고른다. (무엇을) 게임을 할 때는 나보다 경험이 없는 친구와 하는 것이라 내가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실력도 느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친구가 방탈출에 흥미를 갖게 되면 뿌듯하고, 게임 내에서는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며 느는 느낌이 있다.(왜)
방탈출을 하는 재미는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고 경력이 쌓이는 것과 비슷하다. 비슷한 동기끼리 성장해 나갈 수도 있고, 더 잘하는 사람에게 얹혀갈 수도 있고, 후배를 키우며 실력이 늘 수도 있다. 취미이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지능도, 문제를 푸는 능률도 올라가는 게 방탈출의 매력이다. 술도 마시면 늘겠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 운동은 체력과 몸을 키워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귀찮기도 하다. 방탈출은 취미임에도 성장하는 즐거움과 일상에서 벗어나는 활기를 준다. 나는 방수에 비해 실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방수가 쌓이면*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하다.
*방수가 쌓이다: 방탈출을 한 횟수가 늘어나는 것.
방탈출을 100번 이상 한 내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안본 눈, 안본 뇌’를 사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처음 느낀 충격적인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뜻이다. 그것처럼 이미 많은 테마를 해본 내 친구는 아직 방탈출 경험이 적은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내 친구도 아직 해볼 테마가 많다. 국내에 방탈출 테마의 갯수는 1,000개가 넘고, 계속해서 새로운 테마가 나오고 있다. 무궁무진한 다양한 테마들이 있고 제각기의 매력이 있다. 가보기 전까지 어떤 내용일지 모르고, 들어가봐야 내용을 알 수 있기에 방탈출을 하는 것은 늘 설렘이다. 앞으로 열어볼 방들이 많아서 신난다. 앞으로 삶에서도 해보지 않은 경험들이 계속 생겨나지 않을까? 그 경험들도 방탈출처럼 설렘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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