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Aug 19. 2023

누나와 남동생이 함께 가는 목욕탕

feat. 방탈출. 둘이서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탕


누나와 남동생이 함께 가는 목욕탕



“아니 누나랑 남동생이 같이 갈 수 있는 목욕탕이 있어?”


엄마가 묻는다. 그렇다. 오늘 퇴근 후 남동생과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찜질방이면 남녀가 함께 갈 수 있지만, 우리 남매는 탕 자체도 함께 갈 수 있다. 왜냐면 목욕탕을 테마로 한 방탈출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이없어하는 엄마의 오해를 풀어드리고, 방탈출 장소로 향했다. 



우리가 함께 하기로 한 테마는, 비트포비아 던전의 <강남 목욕탕>이라는 방탈출 테마다. 쉽고 재미있어서 옛날부터 유명한 테마이다. 원래는 그 테마를 친구들과 하려고 했었다. 힘들게 예약까지 성공했는데, 친구들이 사정이 생겼다며 못 가겠다고 했다. 기대하던 테마이기에 취소하기가 싫어서 할 사람을 찾았다. 그때 남동생이 생각났다. 


“H야 누나랑 방탈출 갈래?”

“좋아.”


동생은 순순히 승낙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동생이 같이 가 줘서 좋기는 한데, 찜찜했다. 동생과 <강남목욕탕>에 입성했다. 진짜 탕 안에 같이 들어오다니 신기했다. 우리는 우당탕탕 헤매면서 방탈출을 했다. 테마 내에 신기한 장치들이 많아서 감탄사를 내지르며 즐겁게 게임을 했다. 무서운 테마는 아니지만, 불빛이 어두운 곳이 있었다. 거기서는 동생에게 무섭다며 투정도 부렸다. 끝나고 함께 사진도 찍고, 보드판도 그렸다. 즐거웠다. 하지만 찜찜했다. 내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됐는데…



“누나 이 테마 해봤어? 진짜 재밌더라.”


예상대로 동생은 방탈출에 빠져버렸다. 동생은 원래 머리 쓰는 걸 좋아하고, 보드게임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대탈출>, <지니어스> 같은 두뇌 플레이 예능도 좋아했었다. 게다가 내 동생이지 않은가. 피가 어디로 가나.. 동생도 방탈출에 빠져버릴 줄 알았다. 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하다는 테마들을 다 해봤다면서 재미있다고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웃으면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후회했다.

 


찜찜함의 이유. 취준 탈출




찜찜함의 이유는 동생이 아직 인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취준생이었던 동생은 한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이 되었다. 하지만, 인턴이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동생이 취준생일 때, 부모님과 나는 내심 걱정을 했다. 동생은 20대의 후반이였고, 요즘 취업이 원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회사에 들어가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시작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인턴이 되서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가도, 정직원이 언제 될지 모르기에 마음이 온전히 편치는 않았다. 내가 방탈출을 하자고 해놓고도, 괜히 쓸데없는 취미에 헛바람이 들게 한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누나 같이 방탈출 하러 갈래?”

“바빠. 글도 써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너는 여유로운가 보다?”



동생의 제안에 일부러 틱틱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타박하자. 본인도 일을 하지만, 잠깐 짬이 날 때만 방탈출을 하는 거라고 변명했다. 쟤는 이제 인턴생활에서 벗어나서 정직원도 돼야 하고, 그러려면 업무 관련 공부도 해야 되는데, 언젠가는 돈도 모아서 결혼도 해야 되는데… 방탈출은 가격도 꽤 된단 말이지. 쟤가 지금 방탈출을 할 때가 아닌데.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 건 아닌가? 남편은 내 말을 듣고는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지가 영업해 놓고, 뭔 소리래. 너나 잘해.”


역시 맞는 말이다. 내 남편은 맞는 말 머신, 맞말머신이다. 아니 막말머신인가? 동생과 함께 방탈출을 즐기고 싶은 마음과, 동생이 무분별한 취미생활에 빠질 것 같은 마음.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마치 방탈출을 할 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동생이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막 나가는 애들은 소액 대출도 하고 명품도 마구 산다는데.. 쟤가 그런 무분별한 지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너무한가? 



탈출을 응원하며



방 얘기를 하다 보니, 동생과의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결혼하기 전, 부모님은 더 작은 규모의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자연스레 내 방은 없어졌다. 하지만 당시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마음은 괜찮았다. 부모님의 새 집을 방문한 날, 동생에게 여기가 네 방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동생이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누나 여긴 우리 방이지.”


그런 동생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한다. 그 말이 내 마음 한편에 남아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우리의 방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 동생은 어떤 누구보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모두가 어색해하는 상견례 자리에서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낯을 가리는 내 남편에게 항상 친근하게 다가간다. 친구들도 동생 성격이 너무 좋다며 칭찬한다. 동생을 어릴때부터 봐온 단짝 친구들은 어른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잘하니까 사회생활도 잘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방탈출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눈을 뜨게 된 내 동생.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듯이, 사회라는 공간에서 자리를 잡는 문제도 잘 해결될 거다. 그리고 방탈출에는 여러 가지 좋은 점도 많으니까, 나쁜 취미보다는 나을 거다.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나도 함께 도와줘야지. 그리고 동생이 정직원이 되는 날 정말 재미있는 방탈출 테마를 같이 하러 갈 거다.   



동생과 함께 즐긴 방탈출 후기 ▼

https://brunch.co.kr/@ojen1128/224










이전 03화 방탈출 유니버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