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관계보다 수단이 앞선 만남이 더 좋다. 방탈출 모임처럼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인사를 했지만, 사실 앞서가는 사람과 나는 같은 방향이다. 굳이 같이 가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들른다고 했다. 발걸음을 천천히 느리게 옮긴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다. 온라인 카페 글을 보고 사람들이 전부 모였다. 번개로 만난 우리는 방탈출 두 개를 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인사치레가 없는 담백한 모임, 탈출이 끝나면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는 관계다. 일면식이 없던 사이라 친해지기도 어려웠고, 구태여 친해질 필요도 없는 일회성 만남이었다.
“제가 후기 썼는데 읽고 좋아요 좀 눌러주세요.”
다음날 어제 만난 사람 중 한 명에게 카톡이 왔다. 참 부지런하신 분이다. 그분이 보낸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좋아요를 누르고, 글에 대한 간단한 댓글도 단다. 그 뒤에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로 후기를 쓰는 사람들은 서로 간단한 소통을 했다. 쉽게는 ‘좋아요, 공감’ 같은 버튼을 눌러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궁금한 테마를 상대방이 갔을 때는 질문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 긴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온라인에서는 연락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깥에서의 만남은 아니지만 ‘방탈출’이라는 관심사가 같기에 서로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질척이지는 않지만 산뜻하게 관심을 표하는 관계. 그런 만남이 이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누군가의 호감을 사는 데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기대만큼의 마음이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을 하기도 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표현을 했는데, 상대방이 그만큼 되돌려주지 않을 때 속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런 속상한 마음도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우정도 사랑도 참 좋다. 하지만 나 자신도 바꾸기 어려운데 남을 바꿀 수 있겠는가? 친구들은 절대 내 뜻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30대에 들어서는 바꿀 수 없는 타인에게 집착하기 말기로 했다. 나의 여가는 내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쓰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뒤에는 간결한 만남들이 많이 생겼다. 힘겹게 친구와 시간을 조율해 만나기보다, 카페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방탈출을 가게 되었다. 관심사인 글쓰기나 독서모임을 위주로 모임을 나가는 것도 의미 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 만나면 하는 술 마시기, 맛집 투어보다 알차다고 느끼기도 했다.
방탈출러들과 간헐적으로 간결하게 만날 수 있게 되자, 회사 속 관계에 대한 집착도 덜어졌다. 예전에는 회사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회사를 그만 두면, 덩달아 심란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특히 회사에선 만남과 헤어짐이 더 잦다 방탈출 속 방을 다 나오면 테마가 끝나듯. 사람 간의 관계도 할 일만 하면서 만나는 관계도 있는 법이다. 관계가 우선이 아니라 수단이 우선인 만남도 있다.
정원의 꽃들은 생김새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각자의 향기로 빛난다. 단점도 있지만 모두 저만의 장점으로 빛난다. 반면 애정과 친절은 한정되어 있어 다정을 마구 퍼주게 되면 나에게도 무리가 될 수 있다. 방탈출만 함께 하는 관계가 있듯이. 회사생활만 함께 하는 관계도 있다. 수단이 관계보다 중요한 만남이 있다. 그 또한 나쁘지 않다.
힘 빼며 친해지려고 애쓰거나, 힘 들여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말자. 방탈출은 자물쇠 숫자만 잘 맞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수월하게 자물쇠가 열린다. 이처럼 잘 맞는 사람은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맞춰진다. 좋은 테마를 했을 때 서로 후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관계로부터 오는 집착에서 탈출하자. 집착에서 먼저 탈출하면 관계의 고민도 자물쇠 풀리듯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