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와서 3달 동안 이사를 4번 했다. 첫 시작부터 꼬였던 걸까.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홍대에서부터 강릉 주문진, 양양, 다시 강릉으로 강원도 곳곳에 짐들을 지고 헤매 다녔다.
가계약을 무효로 하고 급히 임대를 한 곳은 강릉 주문진에 있는 아파트였다. 방 하나에 큰 짐들을 다 몰아넣어두고, 거실엔 airbnb에서 썼던 TV와 넷플릭스, 아이팟을 연결했다. 낯선 환경이지만 즐겨보는 넷플릭스 시리즈, 늘 듣던 음악, 책들을 세팅해두니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달려 나가 구석에 간신히 보이는 바다 조각에 설렜다. 가까이 큰 수산 시장이 있는 것도 좋았다. 신선한 횟감이 즐비했고, 조개며 가리비 같은 것들을 사다 올리브유에 마늘, 고추 같은 것들을 넣고 익히면 금방 맛있는 요리 하나가 완성되었다. 서울과는 다른 분위기에 장을 보고, 밥을 먹는 것도 마냥 재미있었다. 커피는 당연히 바다에 나가 마셨다. 통창 가득 바다가 펼쳐졌고, 노트북만 펴면 그 어디도 부러울 것 없는 사무실이 되었다.
지내는 집의 주인은 근처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근처 매물을 보러 왔다 바다 앞 요상한 분위기의 건물을 발견했고, 호기심을 못 참고 들어가자 산적처럼 수더분한 그가 있었다. 업사이클링을 컨셉으로 한 게스트하우스는 흡사 재활용 센터 같은 분위기였는데 손님 대신 워킹 홀리데이로 온 외국 스태프만 잔뜩 기거하고 있었다. 이 시골에 다국적 방랑자들이 모여있는 것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바로 앞의 바다가 허름한 건물과 폐가구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예전 횟집이었던 건물은 잘 리모델링하고, 깔끔한 가구로 다시 채워 넣으면 바다 앞 근사한 호스텔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를 내려보는 옥상에서 요가를 하고, 북적이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순간 상상이 되었다.
공간을 소개하며 보여준 마지막 방의 뷰가 압권이었다. 건물주가 자신의 별장처럼 따로 만들어 둔 방이었다. 불편한 계단을 올라가자 바다 위 붕 떠있는 것 같은 방에는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바다 뷰를 보는 순간 이곳에서 36시간 정도만 주욱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파도가 침대 위까지 넘실댈 것 같은 거리였다.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파트너는 공간을 찾고 있었고, 이 호스트는 함께 운영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스스로도 이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망하기 직전의 이곳을 구조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거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인가 싶었다. 이왕 우리가 코 앞에 와서 지내게 되었으니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기로 했다. 현재 운영되는 실태, 공간의 체류 경험을 먼저 알아야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안이 나올 터였다. 함께 사업을 할 사람인가, 각자의 영역을 어떻게 분리하고, 수익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야기할 것들이 많았다. 논의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 직접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 바다 위 방에서 지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듯도 하다. 다시 짐을 옮겼다. 두 번째 이사였다.
그 겨울의 바다 위에서 아침을 맞고, 근처 등대로 산책을 다녀오고, 밤이면 낚시꾼들을 내려다보며 잠이 들었다. 오직 바다만이 위안이 되어 주었다. 공간의 위생 상태, 곳곳의 너저분함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파트너십 논의 역시 제안한 사람이 갈피를 못 잡고 일을 미루는 통에 진척이 없었다. 한술 더 떠서 호스트의 동생이 찾아와 우리가 뭔가를 가로채기라도 하는 양 심술을 부리며 소란을 피워댔다.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일단 한달살기 아파트가 나온 양양으로 갔다. 서퍼들의 거처나 주말 세컨 하우스로 많이 쓰이는 곳이었다. 세 번째 집은 황량한 들판 너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뷰를 가지고 있었다. 군사 지역으로 통제된 것만 아니라면 탈 만한 파도가 계속 들어왔다. 베란다에서 파도를 확인하고 가끔 죽도로 서핑을 갔다. 대부분의 시간은 동해안 일대를 탐험하는 데 쏟아보기로 했다.
"살기에 좋은 곳은 어디일까?"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면 어디가 좋을까?"
해는 짧고 동해안은 넓었다. 통일전망대부터 찍고 내려오기로 했다. 북쪽 끝 대진, 화진포, 반암 해변부터 고성을 훑었고, 속초를 지나 설악, 낙산, 하조대, 남애리의 분위기를 살폈다. 겨울이어서 더 그랬겠지만 동해안의 소도시들은 적막했다.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지내는 양양 아파트도 평일 밤이면 불 켜진 집을 찾기 힘들었고, 복도에서 누군가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언제든 들릴 편의점, 장을 볼 마트, 극장과 같은 도시의 인프라도 찾기 힘들었다. 서울을 벗어난 것이 그제야 조금 실감이 됐다. 처음 스쳐 지나간 강릉이 도시로 보이기 시작했다. 강릉은 서울의 구 하나 보다 적은 21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곳이지만, ktx 개통으로 2시간이면 서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대형마트(무려 2개나!)와 극장을 갖췄다. 바다, 호수, 솔숲, 산 자연환경뿐 아니라 카페 문화가 발달해 어딜 가도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맛있는 커피를 살 곳이 없는 혼돈을 몇 번 겪다 보니 이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그렇게 강릉으로 4번째 이사를 했다. 3달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