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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산문 -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주로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서 느낀 점을 기록하는 에세이류의 책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의미없는 것들을 관찰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경우 아예 없는 일을 가상으로 만들어 내는 소설/문학이나, 정보를  나열해두는 비문학 정보서적보다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는 일이 재미있어서 에세이를 좋아하는  같다.

지금까지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 통신’이었고, 그 다음이 무라카미하루키의 에세이들이었다. 3월 육아 휴직 첫달에 많은 책을 빌려보다 문득 발견한 장기하 산문집은 최근 읽었던 책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내 스타일 에세이였다. 그리고 며칠 전 장기하가 새 음반을 발매 했는데, 왠지 그의 산문집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것이 마치 내가 그를 잘 아는 사람인것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까지 주었다. 이러다 실제 장기하씨를 만나면 친한척 이름이라도 부를지도 모르겠다.(얼굴이 알려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의 느낌을 담은 내용도 책에 있음 ㅎㅎ)

책을 펼쳐 읽다가 ‘내가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정도로 하루키의 문체와 생각이 비슷한 점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장기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책에 써있어서, 궁금증이 바로 해소 되었다.) 라면을 어떻게 맛있게 끓여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철학적인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장기하라는 ‘뮤지션 삶이나 생각은 어떤지 슬쩍 들여다 볼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처럼 사는 월급쟁이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하루 종일의 시간을  마음대로   있는 사람, 그러나 어느 정도 얼굴도 알려져 있고, 무언가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아야 할것만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는 예술가의 삶은  이렇구나,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며 영감을 얻어  이렇게 좋은 노래를 내놓을  있구나, 라는 정도의 이해를   있게  책이다. 그의 철학이나 생각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그의 음악에 대한 팬심도 더욱 강해졌다. 최근의 노래 가사나 도인같은 컨셉도 매우 사랑스럽게 보이고 말이다. ㅎㅎ ​


좋았던 내용 몇가지 적어봐야겠다. 아..너무 많은가?


-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때 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 나는 기분만큼 믿을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는 흙탕물이 서서히 흙과 물로 분리되듯 시끄러운 생각들이 점차 가라앉고 하고 싶은 바가 뚜렷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보다가 그런일이 일어난 적은 아직 없다. 대신 뇌의 한 근육이 미세하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기분이다. 회복과 피로가 불균형하게 뒤섞이는 느낌이랄까.


-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고기를 먹었을 때는 내 위가 음식물을 상대로 이종격투기 경기를 벌이는 듯하고, 채식을 했을 때는 위가 음식물과 커플 체조를 하는 느낌이다….(중략) 어쩌면 소화기관이라는 것은 주기적으로 강도 높은 과제를 수행해야만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러고보면 사람의 성향이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한사람이 가진 불변하는 본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본질은 누구 옆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 이런 과정을 편하게 느끼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열심히 구축해온 자유로운 삶이 가진 그늘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막연함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뜻이 된다.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뇌만을 이용해 내 뇌를 퇴근시켜야 한다…(중략)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 nothing that has happened so far has been anything we could control by Tame Impala


애초에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내 힘은 어차피 별로 세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무력감을 느낀 것이 머쓱해지기도 한다. 나는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 인공지능도 이제는 점차 일종의 자연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다 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정도가 세상에서 한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 생각해보면 여태껏 살면서, 멋진 순간들은 다 내 의도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찾아왔다.


- 삶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세상 전체로 보면 한 사람의 삶은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살아가는 당사자 혹은 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삶은 나머지 세상을 전부 합한 것보다도 무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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