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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Jul 29. 2020

출판사가 스마트한 조직이 되려면?

앞서 출판사에서 편집장들이 막중한 역할을 강요받으면서 실제로 일이 되게 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에 상응하는 보상은 별로 없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는 현실을 살펴보았다. 정도의 차이가 크지만 다른 업계에서도 중간관리자의 위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 같다.      


경영자들은 편집장들이 기획과 편집, 신간 매출, 편집자 관리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지길 바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권한은 주지 않는데, 이는 인지부조화와도 관계가 있다. 수직적인 조직관리 개념을 갖고 있어 부서장이 해당 부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회사를 수평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편집자나 디자이너들을, 군대를 모델로 한 기존의 조직구조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수평적 조직구조를 지향하면서 구체적인 업무에 임할 때는 수직적 조직구조에 입각해 행동하는 데서 모순이 생겨난다.     

 

경영자가 수직적 조직구조론에 기반하여 중간관리자들을 대하면서 중간관리자들에게는 직원들을 수평적인 구조로 지휘하라고 하는 것은 가뜩이나 규모도 작은 출판사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직관리의 핵심은 일관성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조직들은 위계질서에 의해 각 부서의 장이 해당 부서를 책임지고, 그것을 통합한 부문들을 각 부문장들이 책임지고, 더 상위 조직들은 본부장들이 책임지는 식의 수직적인 구조로 운영되었다. 이렇게 각 리더들이 작은 단위들부터 큰 단위들까지 촘촘하게 지배하여 조직의 규모가 커지더라도 일사분란한 군대처럼 작동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인적 지배를 통해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이런 구조가 작동하려면 각 리더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데, 권한을 부여하지도 않고 책임지라고 하면 각 리더가 자신의 부서를 지배할 수 없어 조직이 일종의 무정부주의 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은 직급별 체계는 무시하고 사내 권력의 눈치만 보게 된다. 마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그런 조직이 된다. 대표적인 사내 권력은 당연히 오너이고, 그 외에 오너의 측근, 실세 임원, 직급과 상관없이 오너의 총애를 받는 직원 등이 있다.     


반대로 부서장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면 그걸 남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마치 중세의 영주들처럼 각자의 성을 차지하고 그 안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며 회사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 추구하는 부서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기 쉽다. 부서장들이 부하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일이 횡행하기도 한다.      


출판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출판계 평균 이직률이 너무 높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부서장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출판사에서 발생하기 쉬운 문제는 편집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편집장이 주요 저자들 및 직원들과 함께 다른 회사로 통째로 이직하거나 창업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보니 경영자들은 편집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기보다는 경계하게 되기 쉽다.    

  

직원들 역시 막강한 권한이 있는 상사가 자신을 좌지우지하기 바라지 않는다. 상사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면 팀 내의 다른 목소리가 묻히기 쉽고, 아무리 좋은 복지제도와 급여를 제공하는 회사라도 상사와 잘 맞지 않는 직원에게는 회사가 지옥이 된다.      


애초에 특정인이 너무 막중한 역할을 맡는 것 자체가 회사에는 리스크가 된다. 그 직원이 나가면 어쩔 것인가?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이직자는 늘 존재한다. 핵심 인재가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에 애플을 영속하는 회사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애플은 그의 최고이자 최후의 작품이었으니까.      


수평적인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소프트뱅크의 ‘페퍼’ 같은 인간형 로봇이 대중화되어 회의시간을 잊어버리거나 제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궁금하거나 공유할 정보들은 그 로봇에게 물어보거나 전달해 달라고 하면 되니 부서장은 인간 메신저 역할에서 해방된다. 사실 로봇까지는 없어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 메신저가 아닌 진짜 메신저와 이메일, 공유문서, 인트라넷만 잘 활용해도 된다. 그냥 공유문서를 만들어 각자 기록하면 되는 것을 편집장이 일일이 취합해서 보고하라고 한다. 그래서 부서장들은 자료를 뿌려주고 취합하는, 일 같지도 않은 업무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긴다.     


나이에 상관없이 건망증이 심한 직원들이 많다. 기억력이 나쁘면 기록이라도 해야 하는데 다이어리는 왜 들고 다니는 것일까? 근태 문제가 심각한 편집자들도 드물지 않다. 근태 문제와 건망증의 확실한 원인 중 하나로 내가 발견한 것은 수면 문제였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편집자들을 여럿 보아왔다. 불면증 때문인 경우도 여럿 있었고, 게임이나 영상 시청 등으로 잠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보면 수면이 부족한 직장인들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가장 큰 경쟁자를 ‘잠’이라고 했다.      


공유한 정보를 직원이 숙지했는가 여부, 직원이 제 시간에 출근하는가 여부를 부서장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부서장이 인적으로 부하직원들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문제를 부서장이 책임지려면 직원들의 사생활에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일정 관리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편집자가 스스로 수립한 연간 출간 일정을 어겼다고 하자. 편집자가 제때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거나 필요한 지원을 제때 요청하지 않았다면, 혹은 편집자가 일정을 미뤄달라고 충분한 근거를 들어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경영자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이 많이 지연되었다면, 편집장은 그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부서장들은 그런 상황에서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를 해서 일정을 맞추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추가 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 회사에서 부서장이 그런 지시를 내리는 것은 노동법 이슈가 있다. 편집자의 역량이 부족해서 업무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연봉과 승진 등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절대적인 작업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면 추가 근무를 지시하되 그에 따른 수당을 주거나 대체 휴가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부서장에게 부하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추가 근무 수당, 대체 휴가를 지급할 권한이 없다면, 권한이 없는 일에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실무자가 감당하기 어려워하던 책을 그냥 내가 맡아서 작업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떠맡은 긴급한 업무라 장기간의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이어졌다. 실무자가 만들던 책을 중간에 편집장이 대신 진행하는 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바람직하지 않다. 회사가 적자인 위기 상황이었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책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지만, 그런 경우 실무자가 반발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이후에 다른 실무자들이 버거워하는 일들을 죄다 내게 맡기려는 경영자 때문에 황당했다. 부하직원의 업무 능력이 부족하면 상사가 다 대신하라는 것은 직원의 역량 향상이나 합리적인 업무 분배는 도외시하고 노동 착취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블랙기업의 행태다.      


수직적인 구조에서는 부하직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서장 몇 명만 들볶으면 회사가 굴러간다. 하지만 수평적인 구조에서는 몇 명 갈구면 그냥 그 사람들만 개인적으로 괴롭히는 것일 뿐이다. 그럼 경영자가 모든 직원을 직접 갈구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할까? 수평적인 구조에서는 모든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대신 자율적으로 수행한 업무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모든 부서 및 직원의 권한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규정하여 권한의 범위와 한계,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모두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공유해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하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출판사에서는 출판사의 일정 관리, 독자 관리, 거래처 관리, 기획/편집과 관련된 의사결정 조율, 국내 계약 관리, 외서 계약 관리, 홍보 업무 등을 분리해서 편집장, 기획팀(실)장, 편집 주간, 외서기획실장, 홍보실장 등에게 나누어 맡긴다. 규모가 작으면 어쩔 수 없이 편집장 한 명이 전체 관리를 맡더라도 단순 행정 업무는 구성원이 모두 나누어 맡아야 회사가 굴러가는데 체계가 잡히지 않은 회사에서는 제대로 업무 분담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편집장은 우선순위대로 급한 일 위주로 일하고, 실무 편집자들도 당장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일들만 되는 대로 처리한다.      


그러다 보면 단순한 계약 관리를 소홀히 해서 인세 지급이 누락되거나 재쇄 수정사항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아 명백한 오류 수정이 반영되지 않기도 한다. 새로 입사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기에 앞서 각종 문서와 자료를 찾아 헤매면서 혼돈에 빠진 부서 업무를 정상화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뺏기는데 경영자는 당장 실적을 내라고 재촉하니 노사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회사는 경험과 노하우가 사내에 축적되지 않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초기화해서 다시 시작하는 방식의 기획과 편집이 이어지기 쉽다.      


사람 자체가 운영 시스템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무리 없이 업무가 이어지도록 회사의 시스템 자체를 정비해야 한다. 부서장이 직원들을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각자 수행하는 업무의 진행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감시하고 일일이 지적하는 것도 끔찍한데, 직장 상사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훨씬 더 끔찍하다. 사람을 통한 감시와 제재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한 조직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발달한 IT 환경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편집장은 편집장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편집장의 주요 업무는 풍부한 경험 및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획과 편집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율하는 일이다. 우선 출판사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원칙을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문건으로 작성할 수도 있고,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편집장은 그 원칙이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잘 구현되는지 관리한다. 회사는 실무자의 재량권, 편집장의 의사결정권의 범위를 규정하고 그 안에서는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경영자는 회사의 주요 사안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을 지닌다. 편집장은 편집자와 경영자 사이에서 양측이 지닌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여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좋은 회사란 결국 좋은 의사결정을 많이 하는 회사이다. 다음 편에서는 출판사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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