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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Sep 28. 2024

다시 벗을 수 있을까

왜곡




어이, 나 좀 보지.


툭, 하늘이 부릅니다.

이부자리에서도 제 쪽으로 고개를 툭 기울여놓는가 하면 꿈에서도 구름 툭 던져놓고 타고 오라던 무심한 하늘입니다.


  어떻게 타는지는 알려줘야지...


그거 한번 타보겠다고 늦어버린 아침에도 하늘은 노트북 위 분주한 손 멈춰 세우며 얼굴을 맞보게 합니다.


나는 언짢다는 표식으로, 바라보되 눈을 감아버립니다.

눈을 감고 하늘을, 위안도 없는 가을하늘을 힘껏 날려 봅니다.


쓸쓸하지만 가득하기에 그럭저럭 버틸만한 이 순간을 가을이라 부르던가요.

|

쓸쓸함도 가득이면 괜찮은 건지.



가까이 가봅니다.

옥상에 오릅니다.

잠자리 한 마리 못 나는 늦깎이 하늘.

코스모스 향기 잊은 채 눈을 감고도 태양은 마음속으로 자꾸만 범접합니다.


빨강... 주황... 노랑... 하양...

끝내 투명해질 때까지 가만 들여다봅니다.


지루하면 눈에 힘을 줘 보기도 하는데 밝은 빛도 힘을 주면 순식간에 진분홍, 보라... 남색으로 변합니다.

새삼 색깔이 가진 의미들은 모두 태양에게서 왔구나 떠오릅니다.



이제 안경을 벗을 차례입니다.


늘어진 티셔츠 목에 안경다리 걸어 놨더니

세상에 세상은 원래 이토록 푸르렀는데

이렇게 생생한 율동이었는데


나는 안경잽이

칙칙한 청광차단렌즈


마땅히 눈 속으로 들었어야 할 푸른빛 없으니

모자란 마음이 스스로 퍼렇습니다.

쉴 새 없이 생산되는 회오리가 갯바위를 멍들이며 부서집니다.


아... 그깟 모니터가 나를 얼마나 먹여살렸습니까.

좋은 거 한번 먹여준 적 있습니까.

술 마신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안경 쓰면 어쩐지 눈에 힘이 잔뜩 들어 간단 말이에요.

화내는 게 아니고요.

짜증 낸 거 아니라고요.

빼액! 빼액! 한 적 없다니까요!

술 마신 기억뿐입니다.


인간 같은 잡종은 말이에요.

도구 덕분에 진화를 못해요.

어린이 73%가 근시인 거 아시죠.

진즉 모두는 눈이 멀고 다른 게 열렸어야 했지요.

열려야 할 건 스마트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벗을 수 있을까요.

선명한 거짓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도 진실이야.

닥치고 뿌옇고 두려운 진실과 마주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있다가도 없지.

없다가도 있지.

있없지.

앲지.

앲네요.


아니오. 앲습니다.


중간 안을 채택해 볼까요.

청광차단기능만 제거해 보는 거예요.

돈 아깝지만 렌즈만 바꿔보는 거예요.

아, 귀찮은데 당장 부엌에 가 수세미로 박박 밀면 벗겨지지 않을까요.






가지고 있는 안경을 모두 가지고 나와 번갈아 쓰며 비교해 봤습니다.

자외선 차단, 블루라이트 차단, 아무런 기능이 없는 렌즈도 천연색은 보여주지 못했어요.

 

나에게 주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그조차 누군가에게는 거짓일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진실이고 싶습니다. 진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는 동안만 진실할 순 없잖아요. 꿈에서만 진실을 볼 순 없잖아요. 꿈만 꿀 수는 없잖아요.




평범한 안경렌즈의 왜곡된 색상입니다. 이래서 한평생 우중충한가 싶습니다. 불통의 까닭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대단히 큰 손해를 보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주어진 대로 살아야 건강하듯 천연의 블루라이트는 사람에게도 마땅히 중요한 모양입니다. 수행력 향상, 각성 상태 강화, 반응 시간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리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렌즈라도 본래 내 눈과 똑같이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씁쓸하네요.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가뿐히 벗을 수 있었던 용기랄지 열린 마음, 큰 사랑이 다시 깃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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