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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Nov 07. 2024

윤식판




심퉁한 모양과 소리를 들었어. 들려왔어. 원하지 않았는데 거기 왠지 숨어 있었어. 통령이었어. 웃음이 났어. 그런 웃음은 아니었어. 한낮인데도 쌀쌀맞아서 그만 들어가 낮잠을 잤어. 꿈을 많이 꿨어. 꿈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게. 마지막엔 급식실이었어. 메뉴는 짜장. 그런데 면도 밥도 단무지도 없었어. 나는 검고 끈적한 그것을 한 국자 푹 떠냈어. 건더기 하나 없었어. 그때 홀연히 일이 시작되었어. 내가 들고 있던 식판이 그였어. 팩트 같은 질감에 나는 놀라기도 했고 왠지 화가 치밀어 들고 있던 쇠국자로 그만 식판을 내리쳤어. 짜장이 분처럼 사방으로 튀었어. 수십 번 내리치니 포기했는지 아님 잔머리가 굴러가는 건지 아예 맞기 좋은 자세를 취했어. 점점 더 좋은 자세로 찌그러지며 식판은 하나둘 시인했어. 그때 일찌감치 밥을 먹고 밖에 나가 있던 아이들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하나둘 들어왔어.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이 급식판이 맞냐고 물었어. 아이들은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멀찌감치 서서 고개를 끄덕였어. 안경 쓴 아이도, 캔디처럼 곱슬머리 양갈래 묶은 아이도 맞다는 말만 작은 틈으로 겨우 내뱉고는 황급히 밖으로 사라졌어. 나는 검게 굳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식판을 더욱 내리쳤어. 맞다 보니 내성이 생겼나 봐. 식판은 꽹꽹거리면서도 불상처럼 그윽이 말하길 저가 잘못했으니 맞을 뿐이라고 했어. 그 떳떳하고도 침착한 듯한 태도가 마음에 자꾸 걸렸어.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어. 멀쩡했어 그 사람. 애당초 정신이 식판에 담기지 않았는지도 몰랐어. 쇠국자가 아닌 다른 게 필요했어. 쇠국자는 곧 부러질 거고 그 틈에 식판이 허리를 펴고 제 몸을 크게 휘두를 것만 같았어. 대책이 필요할 즈음 잠에서 깼어. 사몽비몽 가운데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어. 뭘 할 수 있겠어. 축복해 주기로 했어.



축복에 대해서—

문득 악연이 떠오르면 충분히 살핀 뒤에 끝으로 축복합니다. 그것으로 그들이 실제로 복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요. 축복은 가장 먼저 내 안으로 향합니다. 내 속의 그들이 복을 받으면 그들은 미소 짓고 떠납니다. 떠나며 때로는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끝내 부둥켜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좋은 기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타인을 속이거나 끌어들여 자기확장만을 꾀하는 사람입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며 주변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작은 상상력을 더해야 합니다. 따스한 햇볕을 부여합니다. 코스모스 너른 들판에서 모두와 함께 뛰놀며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축복은 비범하고 광범합니다. 나와 나의 당신, 나아가 모두의 안녕을 지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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