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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잭 라 이르 Nov 14. 2024

또 모기, 그치만 거미, 그 덕에 사람




아직도 창문을 열면, 주방후드를 돌리면, 또 그러지 않더라도 모기는 나온다. 그래도 날씨가 선선하니까 어후 그새 쌀쌀하니까 모기를 바짝 쫓아다니면서도 마음이 그닥 불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가능한 살아있는 티를 내어선 안 된다. 열정 같은 걸 내뿜으면 끝이다.

차갑게.

고요하게.

여기 사람 없어요.

아무도 안 살아요.

아무도 없어요.

폐가예요.

야심한 밤 가끔 글이나 지으려 등을 켜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더군요.


엄마아빤 왜 날 O형으로 양념했나요.

모기 나만 물잖아.

피 한 방울마저 사람 살리는 데 긴하게 쓰라고.

주사위를 그렇게 돌려서 성공시켰을 텐데.

여기 사람 없어요.



모기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는 대략 4월부터이니 4, 5, 6, 7, 8, 9, 10, 11... 물론 한겨울에도 가끔은 거친 인사를 나누지만 적어도 8개월 동안은 부지런히 배드민턴을 쳐야만 한다. 덕분에 살찔 틈은 없었지만서도 무언가에 진득하게 몰입할 수도 없으니 명상은커녕 망상에나 빠져 숨 쉬는 것부터가 짜증 나고 부당했다. 그런 것들이 일기장에도 곰팡이처럼 산란하게 번져있었다.


그나저나 모기가 갈수록 영악해진다. 냄새도 너무 잘 맡고. 시력도 미쳤다. 사뿐히 활공하던 것이 앉은자리에서 배드민턴 채만 들었다 하면 무슨 생각인지 들썩! 들썩! 각기춤을 춘다(어이어이 나 아직 일어서지도 않았다고). 벌써 정보가 전달됐다고? 유전자에 벌써 적었어? 주황색 배드민턴 채를 하도 휘둘러대는 바람에 박살이 나서 새로 하얀색을 집어든 한동안은 그 춤을 잊었나 했더니 고새 또 배워서 춘다. 진짜로 미친 거 같아서 허파에서 쇳소리가 났다.


이쯤 되니 내 생애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외부 온도 따위의 기상이 아니라 모기는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다년간 지켜본 결과 4월 말부터 급격히 식으며 쪼그라든 마음은 지금 무렵부터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째 계절의 성질과 반대되는 행태. 그것이 모기 때문이든 타고난 인간의 성질이든 섭리에 반하는 마음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자그마치 생의 2/3를 시달리며 안 그래도 되는 손해를 입어야 하는 것이다. 망할.


줄곧 모기가 기승이니 분노도 많았고 반면의 무기력 또한 깊었는데 그 겹에 가리워 이것도 함께 증식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미였다. 녀석은 방금도 화장실 벽에 걸린 수건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근처에 내 손이 닿자 수건 올을 풀어 엘리베이터 타고 로비층으로 (위잉-) 내려갔다. 순식간이었다. 요술이었다. 너무 신기해. 거미줄 치는 것도 말도 안 되게 예쁘고. 대단하고. 진짜로 미친 거 같아서 허파에서 쇳소리가 났다.


생태는 알수록 경이롭다. 몰라도 경이로움을 거저 알려준다. 하나가 활개를 치면 다른 포식자가 자연발생해서 개체수를 조절한다. 피식자인 내가 멸종될 위기에 처하자 하늘에서 거미님이 줄을 타고 내려와 어느덧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아온 걸까. 평생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大공기를 빌려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또 얼마큼의 빚을 지며 살고 있는 걸까. 언젠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300마리쯤 되는 모기 사체를 산처럼 쌓아 놓고 잠든 적이 있다. 타 죽은 모기들의 영혼내가 분향처럼 한밤을 떠돌았다. 다음날 아침 그 무덤은 조금 헝클어진 모양이었을 뿐 거미님이 손을 데진 않은 모양이었다. 大공기가 산을 깎은 것이리라. 거미님은 죽은 음식을 잡숫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마음이 급해, 미혹해 죽은 음식을 즐기는 가여운 존재다.


어떡하면 공물을 산 채로 바칠 수 있을까. 덜컥 생각하길 멈췄다. 그들처럼 숭배라도 할 셈이냐. 그 모습은 신을 키우는 꼴이었다. 거친 동물을 애완으로 고쳐 모시며 생태를 교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침마다 환기하고 배가 고프면 주방 후드나 여닫으며 평소대로 지내면 된다. 여기 사람 있어요. 약간은 티를 내며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섭리고 사랑이다.



집안에서 발견한 거미는 대강 두 종류인데 집유령거미와 말꼬마거미라는 이름으로 모두 손톱 만해서 귀엽다. 시골에서 지낼 적에는 손바닥 만한 것이랑 동고동락했으니 귀엽다. 도시가 모르는 곳에는 농발거미라고 해서 밤중에 얼굴에 쩍 달라붙어 조만간 에이리언을 잉태하게 될 것만 같은 그런 존재가 있다. 그것이 어둔 밤 바퀴벌레로 추정되는 것과 추격전을 벌이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타다다닥. 타다다닥.


지네의 몸통은 온데간데없고 타다다닥, 타다다닥, 몇 개의 다리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는 아침을 맞이해 본 적 있는가.


타닥. 타닥. 모기가 벽지에 슬며시 내려앉는 소리만큼이나 공포스럽다.








*커버 사진은 그 시절 집 앞까지 찾아오신 도롱뇽입니다. 정말 귀엽지 않나요? 님 진짜 도롱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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