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회재 Apr 26. 2024

확인을 누르시면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을 하시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안전한 마을로 이동하게 됩니다


창밖 대봉감나무는 철마다 잘려나가고 빈자리 파랗게 멍을 들이며 살을 찌운다.

봄은 사뭇 싱싱해 보이지만 가장 처절한 계절일 것을 안다.


정렬이 어긋났음을 느낀다.

덜컥 다리 하나가 사각 수렁에 빠졌음을 느낀다.

차원 하나가 찢어졌음을 느낀다.

몬스터에게 사망해서 레벨이 떨어졌음을 느낀다.

삽시간에 세계는 잿빛이 되고 나는 나의 정신을 원활히 조작할 수 없음을 느낀다.


스스로에게 버프스킬을 거는 건 게임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죽음에게 문서가 없으면, 또, 다시 태어날 때마다 곧장 주문을 걸지 않으면 본 던전에서 숨쉴 수 없다.

언젠가 이런 때를 염두에 두고 누적시킨 나의 기록들은 어느덧 하나의 생명이 되어 그것이 뿜어내는 고결한 결계에 작성자는 주인을 잃고 들어가려 해도 뱃살처럼 튕겨져나오고 주문 또한 아무리 버튼을 연타해도 걸리지 않는다.

살아있을 때는 버튼이 있지만 죽었을 때는 버튼도 없다.

삶은 정말 터무니없는 게임이다.


그렇다고 지나온 지역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하면 흡족하지 못하고 더욱이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될 뿐이다.

: ㅈㄹㅇ(자리염自利念)

: ㅈㅅㅇ(지송염持誦念)


죽은 자리, 돌아갈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마 유령인가 보다.

유령일 때는 내버려 두어야겠으나,

바람 따라 어느 나뭇가지에, 부리에, 이빨에 걸리길 내버려 두어야겠으나,

어쩐지 사월이면 잠을 설치고

푸름처럼 배가 부풀고

그러나 나 역시 파랗게 멍을 들이며 정렬을 맞춰야 할 테고

생존으로부터 차근차근 끝내 거룩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떠올리고 나면 피통을 늘려서 마검사가 되어야겠다.

민첩성을 늘려서 마궁사가 되어야겠다.

축복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피격된 감각을 좀 더 키워야 하고 피격 다음의 시스템을 설정해두어야 한다.


ㅋㅋㅋ웃는 사람들.

웃는 자들의 아름다운 세계에서 나는 그들의 웃음에 전연 동의할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는 바보처럼 웃을 수 없으므로 웃음의 틈에 숨어 충치처럼 아득한 가을을 기다린다.


죽을 때마다 다시 태어나기는 점점 귀찮아지고 완전한 끝에서 또다시 고무장갑을 뒤집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 삶이 터무니없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데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