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결말을 피하려면
하물며
화장실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데 회사는 오죽하겠는가
끔찍하게 퇴사하고 싶을 때
퇴사할 이유 여러 개를 나열하기보다
남아야 할 강력한 이유 하나가 있다면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을 텐데
지원서를 쓸 때만 해도
온 우주의 기운을 모을 만큼 간절했을 게 분명하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테니까.
'합격하면 좋겠다'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아, 잘 될 거 같아'
'내게 이런 행운이...! 열심히 한번 해야지'
스스로 되뇌며
원하는 업계에 발을 담그고
우러러보던 사원증을 목에 거는 상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대신
규칙적인 생활패턴에 잠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이뤘다는 성취감과
도태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잠시 취했을 텐데.
입사 후 낯선 환경에서 겪는
작은 사건도 마치 내 존재의 부정처럼 크게 와 닿아
지원 전 간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네...?'
라는 생각이 삐죽 올라오며
탈출할 곳이 있는지 주변을 기웃거린다.
"정말 퇴사할 거야?"
"왜 퇴사하려고 해?"
이제 막 입사했는데,
이제 겨우 일주일 채웠는데,
이제 2주짼데.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물론
많은 생각과 고민을 스쳤겠지만,
아쉬운 마음에 아무 소리 못하고
가만히 듣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한다.
입사 전 마음은 이게 아니었잖아.
일 년이 지난 뒤에도 문제로 여길까.
일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어도 시간은 참 잘도 흐른다.
별 탈 없어 보이는 직장생활에도 순간순간 위기는 있었다.
시어머니보다 더 매섭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때문에
꺼지지 않는 휴대폰 알림에 온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도
'누가 먼저 퇴사하나 보자'라는 독한 마음을 품는다.
나쁜 일로 흔들릴 때도 있지만
좋은 일로 흔들릴 때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동종업계에서 이직 제안이 들어오는데
하필 평소 눈여겨보고
오랫동안 유저로 즐기는 서비스였다면
흔들림은 더욱 요동친다.
하나 둘 옆에 있던 동료들이 이직 제안을 덥석 받아
새둥지를 트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볼 때면
괜히 나만 한 곳에 머물러 정체되는 건가,
몸 값을 높여서 어디로든 가야 할까
조바심에 발을 동동.
그렇다고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의 최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한 제안을 덥석 받고 홀가분히 떠났으나
롱런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다.
좋은 이유든 좋지 않은 이유든
참 어렵고 중대한 문제, 퇴사
타의가 아닌 자의로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하기에
순간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떠나야 할 이유보다
내가 떠나야 할 타이밍을
"x 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자"
강하게 마음먹더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부서지기 쉬운 다짐이다.
오히려,
'저 자리까지 올라간 뒤에'
'저 사람한테 다 배운 뒤에'
'내 커리어에 필요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뒤에'
얼마만큼 벌지 금액을 정하고
그걸 달성할 때 떠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 효과가 좋다.
지금 당장 우리에겐 필요한 건
퇴사해야 할 수많은 이유를
소나기처럼 잠시 지나가는 현상으로 여겨
오늘의 위기를 잠재워줄 명분이다.
내 경우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평소 일처리 능력을 닮고 싶은 사람을 떠올린다.
내가 이직하더라도 그 사람만큼 일처리를 할 수 있을까,
(직급은 다르지만) 그 사람 몫을 할 수 있을까.
같은 회의에 들어갔을 때, 그 사람에게 던져진 질문에 나는 답을 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타이밍이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장애물에 잠시 고통받을지언정
'에라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놓아 버리지 않게 된다.
생각보다 시간은 참 잘 흐른다.
야속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전에 내가 어떤 일로 힘들었는지 조차 흐릿하다.
오늘의 위기가 평생의 위기는 아닐 수 있으니까
홧김에 터져버린 감정을 살짝 눌러서 더 활짝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