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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e kwon Jan 17. 2024

최악의 크리스마스

연말 그게 뭔가요?

연말, 아쉬웠던 한 해를 정리하기도, 내년에 올해보다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용기 내기도 하며, 뭘 시작해 보면 좋을지 이것저것 생각하며 들떠있다. 내가 연말을 기대해 본 적이 있던가?


내가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1학년때였것 같다. 읍에서도 버스 타고 30분 들어와야 하는 경기도 시골에 살았다. 시골에 살아서였을까?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삶에게 주는 유일한 희망이었을까?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365일 가장 기다려지는 날 아니겠는가? 산타라는 존재로부터 한해를 착한 게 살아온 어린이로 인정받는 날, 그리고 보상받는 날이니까.

그 해 크리스마스는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이 있었고, 그걸 받기 위해선 하기 싫지만 착한 일로 포장된 심부름이나, 부모님의 말을 잘 듣으려고 했던 것 같다. 선물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못하는 비루한 기억력이지만, 그 선물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은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이브 밤, 종교 없는 내가 두 손을 모으고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십사, "  다시 한번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모든 신들과, 산타에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왠지 이번엔 내가 원하는 걸 주실 것 같은 확신 있었다. 눈을 힘껏 감고 빠른 시간에 잠이 들고자 최선을 다했다.나의 이러한 기대와 흥분은 새벽에 나의 잠을 깨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침잠 많은 내가 일어나 선물이 놓여있을 만 곳을 탐색했다. 그래봐야 18평 방 두 개 욕실 하나 빌라라 나의 탐색은 곧 끝나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보자마자, 나의 실망감은 바닥에 닿고 그 바닥을 뚫고 지하로 하염없이 내려갔다. 상자에서 우리 빌라단지 입구 쪽에 있는 아주 오래된 구옥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 냄새가 났다.


그 순간, 나의 그동안 환상에서 깨어나 산타는 존재하지 않고 내 부모가 대신해 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 상자는 연말 특수를 대비해  읍내 빵집에서 공수해 온 여러 케이크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산타라는 내가 원하지도 않아도 케이크를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짐칸이 부족해서 우리 집 근처 가게에서 구매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싸구려맛 생크림과  촌스러운 핑크색 장미 장식들, 그리고 맛없는 젤리로 이루어진 케이크이니라니......


어린 내가 느낀 감정은 좌절과 우울함이었다. 우리 부모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우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 우리 집은 꽤 가난하구나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 이후였을까, 나의 감정에 기조에는 우울감과 좌절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한테는 티는 안 냈던 것 같다.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아침 찬물을 뒤집어쓴 듯 한 기분으로 방 안에 앉아 상자를 열지 않고 한 바라보고 있었던 같다.


대학교땐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을 만한 파트너가 없었고, 미국에선 하루하루 서바이벌이라 그런 걸 챙길 겨를이 없고, 어느샌가 내가 사고 싶은 걸 큰맘 먹고 질러 셀프로 선물을 하고 있다. 남편과 연애 초기엔 자잘 구리 한 걸 주고 받았는데.. 성이 차지 않아, 그냥 원하는 것을 각자 사자고 했다.


그것이 훨씬 만족도 높고 행복감도 높았다.어릴 적 기억들이 거의 소실되어 단편적인 이미지들만 남아 나있는데. 이때의 크리스마스는 그 상자에서 나던 냄새, 나의 감정, 소복이 내리던 눈도 온전히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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