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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Feb 08. 2016

부르기에 미안한 이름 아빠

잘하지도 못할꺼면서 미안한 마음은 왜

37년을 살았다. 사는 시간 내내 남에게 신세도 많이 졌다. 도와달라는 일이 생겼고, 위로받을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마음편한 오래된 친구를 찾거나, 가까운 직장동료를 찾거나, 연인이 있을 때면 그 연인에게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단 한사람, 아빠에게만은 예외였다. 무슨 연유인지 도와달라 힘들다 말하기 어려운게 아빠였다. 말 안해도 내 기분상태를 알았고, 집구석을 더렵혀 놔도 아빠는 한마디 잔소리가 없었다. 물론 100번 가운데 한번은 잔소리가 있다.


나는 한부모 자녀다. 엄마가 없는 아빠 슬하에서 자란 사람. 자녀라는 말이 지금 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지만 이전에 '애미없는 자식'에 비하면 우아한 용어가 등장하면서 한부모 자녀라는 말이 거듭 떠오른다.


정은아, 무슨일이냐 아빠한테 전화해라

그제 사무실에서 너무나도 화가나는 일들이 있었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몰려오면서 사무실에서 눈물이 났다. 엄청 울고 화를 내는 순간에 아빠가 전화가 왔다. 좀처럼 그런 순간에 받지 않지만, 뭔지 모를,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나보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말도 못한채 눈물을 마구 흘리고 엉엉 거렸다. 그런데 결국 무슨 일때문에 우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못한채 전화를 끊었다.


1시간에 한번씩 전화가 왔구 문자가 울렸다. 받다 못받다를 반복하다 결국 퇴근했다. 퇴근한 집 한구석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폭풍 눈물이 쏟아졌다. 태어난지 며칠 안되는 아이가 목젖이 다보이게 울듯이 그렇게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래서 전화기를 들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아빠 나 힘들어 죽겠어.




아빠는 손이 거칠다. 그렇다할 버는돈도 없으면서 부지런하긴 엄청 부지런하다며 수십번 아빠를 무시하고 무시했다. 그런 아빠였다. 하지만 난 앞으로도 아빠에게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갖긴 어려울 것이다. 아빠이기 때문이다. 내 화도 다 받아주고, 내 치부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던 사람이었기에. 생초면에 명함을 주고받고, 누군가의 이력에 주늑들어 초조해야할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너무나도 벽이 없는 사람.


용돈과 나, 그리고 아빠

고등학교, 아니 대학때까지 나는 돈을 받아서 썼다. 대학에 가기 전에 2년간 직장생활을 한 탓에 3학년때까지는 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해왔지만 4학년때부터 취업하기까지 10개월을 용돈을 받았다. 까막한 시절이다. 이후 취직을 하고 저금이라는 개념도 없이 월급을 꺼내 서랍에 넣어둔 때가 있었다. 백여만원이 되었던 것 같다. 두었던 금액보다 적어진 걸 알고 물었더니 아빠가 가져갔다고 했다. 사실 그때 뭐 그리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괜찮아

그런데 생각보다 않았다. 돈벌이가 없는 아빠에게 나는 종종 카드론을 해줘야했고, 모아둔 돈을 깨거나 점점 빚더미에 올랐다. 물론 가난하게 자란 탓에 내씀씀이도 물론 문제가 많았다. 돈이 생기면 어떻게 관리할지 몰라 목돈을 한꺼번에 지출하는 일이 잦았고, 없는 돈에 아빠에게 또 목돈이 들어갔다. 그때부터였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아빠를 엄청 미워했다. 심지어 내눈에서 당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요즘은 잠잠하지만 가끔 아빠에게 용돈 일이십만원을 쥐어줄때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분명 있는것 같았다. 엄마없는 자식으로 기르면서 등록금도 내줄 수 없었던 아빠의 마음이 분명 미안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아니, 졸업도 전에 1학기를 마치고, 어느 한 기업에 입사를 했다. 중소기업, 아니 자영업에 가까운 기업이었다. 울고불며 출퇴근을 하던 내게 회사에 찾아가 상무에게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달라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그 회사를 그만뒀다. 그때가 수능이 조금 지나서였다. 다른 친구들이 전부 초콜릿을 받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던 며칠 후. 나는 아직도 아빠가 그때 상무에게 찾아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애들 다 수능보러 가는데 가방들고 출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요.
그런데 일이 힘들다고 하니 좀 봐 주세요.


터보의 노래가 연신 흘러나온다. 신나는 겨울 노래가. 지금도 그 노래가 나오면 아리다. 힘없는 아빠. 그래도 그런 말 했던 위대한 아빠. 쓸쓸한 아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고민들 사이에. 아빠가 큰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제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존재가 사라진다고 해야할까. 나는 다른 고민이 많아지고 아빠는 점점 작아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속 아련하게 남지 않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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