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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버트 Oct 06. 2022

아스터를 묶다



며칠 전, 이틀간 쉬지 않고 내린 세찬 비에 진보라색 아스터 화분이 넘어졌다. 이리저리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내다본 마당에 맥없이 쓰러진 화분 두 개를 발견하곤 불에 덴 듯 뛰어갔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무게가 쏠린 화분은 혼자 힘으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도 아랑곳 않고 화분 두 개를 차례로 구출했다. 임시방편으로 큰 돌을 주워 각각 화분 한쪽을 눌러줌으로써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그들이 겨우 비를 피해 천막 안쪽에 서 있도록 해주었다. 가을맞이용으로 야심 차게 구입했던, 꽃송이를 맘껏 피워댄 우선국 화분 두 개였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2밀리미터 황마 끈을 찾아 보라색 머리를 풀어헤치고 여전히 고전 중인 아스터에게 다가갔다. 어제까지 강의가 있어 짬을 낼 수가 없었지만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다. 아기를 안아 세우듯, 앓아누운 연인을 쓰다듬듯, 안쓰럽게 휘청이는 가지들을 일으켜 세워 직립하도록 묶었다. 내가 그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은근히 풍겨오는 향기가 안타까우면서도 품 안에서 살랑이는 꽃다발 같이 내내 황홀했다.





마끈을 자르던 원예 가위로 꺾인 꽃가지들을 잘랐다. 집 안 곳곳 놓인 화병에 조금씩 소분해 어울리게 꽂아놓고 그러고도 남는 송이들은 이 빠진 컵에 담겼다. 갓 내린 아메리카노와 삶은 달걀과 랩탑과 함께 진한 보라색 안 노란 꽃 심지를 가진 나의 아스터는 주인의 손에 들려 마당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가을이 되어 처연히 사라지는 한 해 살이 식물들과 속삭이며 대화라고 하고 싶지만, 오늘은 내일부터 이틀간 있을 강의 준비를 위해 시간을 더 들여야 할 처지이다. 몇 시간을 보내다가 운이 좋으면 해 지기 전에 장화를 신고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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