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까지 정신없이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만 급하게 정리
성근 눈이 내리는 날, 밀물에 바다에 놓인 무덤이 쓸려나가는 ‘경하’의 꿈으로 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장면이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경하’는 제주 4.3에 대한 책을 쓴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 이 꿈을 꾼다.
그런데 내가 이 꿈이 깊이 다가온 이유는 나 또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다루었던 소재 중 하나가 제주 4.3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처음 제주 4.3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4.3평화기념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소설의 ‘경하’만큼의 고통은 겪지 않았지만 강한 충격은 경험했다.
내가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했던 날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하늘의 색깔도 예뻤고…
그런데 그날 내가 상설전시관보다 먼저 본 곳이 ‘봉안관’이었다. 4.3 유해발굴사업에 의해 발굴된 413기의 유해 중 374기의 희생자 유해가 봉안된, 그리고 그 발굴현장을 재현한 공간..
그 공간에서 나는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까지 좋은 날씨에서 느꼈던 감정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감정을 느꼈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끔찍함의 대비”
나는 이 소설의 ‘경하’만큼 고통을 겪진 않았지만 (아마 그 보다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먼저였다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4.3 사건에 대해 조사하면서 큰 고통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하’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느꼈던 고통과 아픔을 소설 속에서 담아낼 수 있었으리라.
1부에서 한강은 시종일관 ‘죽음’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경하는 유언장을 계속해서 고쳐 쓰고, 친구인 ‘인선’은 신체가 훼손된 채 등장하며, 그리고 ‘인선’은 ‘경하’에게 ‘아마’라는 앵무새가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집으로 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제주도로 간 ‘경하’는 계속해서 내리는 ‘눈’과 힘겨운 싸움을 한다. ‘경하’는 사실 4.3의 고통과 아픔에서 계속 벗어나고자 했던 인물로 등장했다. 그러나 신체가 훼손당하는 사건을 당한 ‘인선’의 연락을 받고 그 이후부터는 오히려 고통과 아픔의 한복판으로 나아가고야 만다.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폭로했다.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에 관한 독특한 인식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현대 산문으로 표현한 혁신가.” - 노벨문학상 선정 심사평 중에서
‘경하’가 그 눈밭을 헤쳐나가며 겪은 괴로움과 고통은 마치 비극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으로 보인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러 가는 제이슨 본이 다른 요원과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겪었던 강한 신체적 고통과 같이…
결국 ‘경하’는 ‘앵무새’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우리가 지난 4.3 때 막지 못한 죽음과 이어진다.
‘경하’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곧 이 세상에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날 일과 연결되는 것이다.
내리는 ‘눈’의 무게
작고 가벼운 새’의 무게
그리고 우리가 연상하는 죽음’의 무게
그 모든 무게가 <작별하지 않는다> 1부에서 나를 계속해서 누른다.
2부에 대해선 마저 읽고 다음 글에서 작성해보겠습니다
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0월의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