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Feb 27. 2023

서른에 희망퇴직을 하다

이렇게 쉽게 끝날 줄 알았다면

회사가 어렵다는 소식은 작년 말부터 들려왔다. 대표가 나와 QnA에 답하는 타운홀에서도 괜찮다는 얘기만 할 뿐 비상경영체제라는 용어도 급격히 줄어드는 복지도 생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잠깐의 위기이고 지금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3개월 간 열심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론칭하는 당일날 중단이 되었고, 수정된 전략을 다운 받고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세우는 과정을 겪고 나니 조금씩 지치게 되었다.


2월 중순에 회사의 운용할 자금이 바닥나 추가 투자를 받지 않으면 회생하기 어려운 상황을 전달받았다. 나는 마음에 준비를 전부터 했었기에 상세한 경과를 듣는 일은 어렵진 않았다. 다만 애초에 이런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팀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팀원들을 다뤄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회사에 남아서 위기를 넘기든, 그렇지 못하든 마무리를 잘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희망퇴직 마감일이 다가오자 불안감이 커지고 주변 동료들의 퇴직 의사를 들으며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이 회사에 남아서 얻는 것과 나와서 얻는 것 사이에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고민을 한참 했다. PO의 역할 중 하나는 회사의 비전에 얼라인을 맞추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PO가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때는 회사의 비전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할 때이니라.


나는 더 이상 비전이 달성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짧은 기간 투자사가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 이들과 같이 달릴 수 있을까 묻는다면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만이 남았다. 남은 기간 여러 사람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내가 떠나는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전에는 막연히 좋아 보이는 회사/서비스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앞으로 갈 곳은 회사의 비전이 어떠한지, 시장의 크기, 대표의 성향 등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회사를 떠나고, 또 남는다. 그 이유에는 각자의 말 못 할 사연이 담겨 있으니 어떠한 선택이든 그들을 존중한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훌륭한 동료들과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굿바이 20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