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Jun 09. 2024

비장애인은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가 불편하다

feat.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읽고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는 주부들 사이에 화제가 되어 인기리에 종료되었다. 나 또한 타임슬립과 스릴러, 로맨스 장르를 좋아해서 중반 화수부터는 방영시간을 챙겨볼 정도로 재밌게 봤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묘사하는 장애에 대해선 아쉬움과 불편한 감정이 있다. 드라마 속의 여주인 임 솔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선 계단으로만 오갈 수 있는 구조라 업무가 어려울 거란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 후 과거로 돌아가 사고를 당한 운명을 바꾸고 돌아온 임 솔은 휠체어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기뻐한다. 휠체어를 탔을 때 높게만 느껴졌던 계단을 다시 한번 마주한 그는 설레어하며 계단 위를 오른다.


장애인의 노력을 그 자체로 바라보기보다 굴절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기본적으로 실패한 사람으로 여겨지곤 하는 우리는 조금만 노력해도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나 '슈퍼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데도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다온 언니처럼, 쉽게 덧씌우는 슈퍼 장애인 이미지는 때로 '넌 그대로 머물러도 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기도 한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196p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처럼 활동하는 이야기에 우리는 감동을 받고 박수를 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애인의 눈에 비친 미디어 속 '슈퍼 장애인'의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오래전 파이콘 행사에 진행보조를 한 적이 있다. 세션이 시작되기 전 홀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눈에 띄는 여성이 있었다. 그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홀 안에 들어가려 애쓰던 참이었다. 주변에 있던 진행보조원들이 그를 도와주려 했으나 손짓으로 거절을 하고 들어갔다. 나중에 행사 위원회에서 진행보조원을 모아 공지사항을 알렸는데, 공지에는 장애인이 먼저 요청하지 않는 한 도와주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이해했었지, 장애인 입장에선 원치 않는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몰랐다. 그 일은 인상에 남아 장애를 접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됐다.


김초엽, 김원영 공저의 <사이보그가 되다> 책에선 장애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보고 듣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기술들이 비장애인 기준에 철저히 맞춘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우리는 청각 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을 때 감동을 받지만, 청각 장애인에겐 처음 소리를 들을 때 낯섦, 불안함을 보지 못한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의 보이지 않는 우열을 만든다.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 비장애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아동의 재활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활의 목적이 '장애의 제거'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재활하는 장애아동들은 장애가 있는 어른이 될 테니까 걷지 못해도, 자꾸 넘어져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재활이 늘어나길 바란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84p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의 저자는 장애인을 특별한 무언가로 보지 않길 바란다. 장애인은 소위 불쌍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거리를 두기보다, "한 번은 안겨서 식당에 들어가고, 또 한 번씩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으려 함께 머리를 싸매는" 그런 관계를 맺길 원한다. 나는 미디어 속에서 장애가 극복의 대상이나 보호의 대상으로서 소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드라마가 판타지에 가깝다고 하니까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솔이가 휠체어를 타면서도 영화감독을 하고, 사랑하는 친구, 연인,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해피엔딩을 그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나이에 얻은 것 잃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