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하나
주변 상황에 무던해졌다. 20대에는 조그만 실수에도 크게 자책했었다. 뭐 하나라도 잘못하는 날에는 퇴근길에 펑펑 울며 걸은 적이 많았으니까. 실수도 한 번, 두 번 겪다 보니 그걸로 인생이 무너지거나 그러지 않는 걸 알게 되면서,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잃은 하나
함박웃음을 짓는 일이 줄어들었다. 20대 초중반에는 잘 웃는 게 장점일 정도로 웃는 일이 많았다. 그 시절에 나는 웃음끼 없는 30대 어른들을 보면서 왜 웃는 일이 적을까 궁금했었다. 웃는다고 해도 사회생활에서 나오는 적당한 미소 정도였다.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아야지 하고 다짐한 것과 무색하게, 그 나이가 되니 웃을 일이 많이 없어졌다. 어쩌다 소리 내어 깔깔 웃을 일이 있으면 오랜만에 얼굴 근육을 쓰는 것처럼 어색한 느낌을 받는다. 요즘엔 무미건조하게 살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웃으려 한다.
얻은 둘
상황과 나를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됐다.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언젠가 지나간다. 예전이라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마치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된 나의 잘못인 양 스스로를 모질게 굴었다. 지금은 안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심리학 관련 어떤 책에선 불안함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마음속에 생각과 감정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심상을 떠올리는 것을 제안한다. 나는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고 불안과 걱정은 단지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이런 훈련을 계속하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아예 없어지지 않는다. 불안이 나를 삼키거나 휘둘리게 만들지 않게 됐다는 의미에 가깝다.
잃은 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예전만큼 높지 않다.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많아질수록 관성적으로 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직 커리어로는 한참은 낮은 연차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되나 싶다. 최근에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이런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 직장일과 병행하면서 잘할 수 있을지 우려했던 것과 달리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을 역으로 직장에 새롭게 적용해 보는 일이 생겼다.
이번 계기로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여야 뭔가를 시도하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이후에도 현업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보컬 트레이닝, 기타 연주 등 본래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하는 걸 생각하고 있다.
얻은 셋
하루를 감사하며 살게 됐다. 20대에는 꽤나 냉정하고 기준이 높은 사람이었다. 세운 기준치가 높아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상대가 웬만한 결과가 아닌 이상 진심으로 잘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령, 어린아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상황이 있다. 다른 이들은 아이를 보고 잘 그렸다며 칭찬하는 반면 나는 어른의 눈높이에서 평가를 했달까.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박하게 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처음인 시절이 있다. 그 단계에 맞는 성장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게 훌륭한 일이란 것을 이젠 이해한다.
과거의 내게 초능력이 있다면 뭘 갖고 싶냐는 질문이 오면 늘 한 가지를 얘기했다. "과거로 돌리는 능력". 과거에 후회했던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때 그런 실수들을 하지 않았다면, 반성해서 더 나은 방안을 찾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다는 것은 그것이 후회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은 내게 초능력으로 뭘 갖고 싶냐고 묻는 다면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고 싶다. 따뜻한 미소로 손님을 맞아주는 카페 직원, 오류가 있을 때 빠르게 대응해 주는 개발자분들, 처음인 인터뷰에도 끝까지 잘 마무리 해준 사이드 프로젝트 팀원들 등등 내가 받았던 것들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작은 배려 하나하나에 감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잃은 셋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를 재밌게 봤다. 프로그램에는 자칫 민감할 수도, 갈등으로까지 번질 만한 주제에 참가자들이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장면이 있었다. 내용이 흥미로운 건 둘 째치더라도 대학시절에만 해도 이런 주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관련 서적들을 챙겨 읽었던 내가 지금은 이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정작 사회에 대한 관점/사상에 무관심해진 것이다. 어떤 이는 배부른 소리라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일부로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권리를 버리고 싶진 않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트렌드를 쫓는 것도 좋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춰 현 사회에 주어진 화두를 고민하고 앞으로의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바라보려 한다.
서른의 시점에서 20대를 돌아봤을 때 변한 것들에 대해 정리했다. 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는 것도 먹는 것도 듣는 것도 취향이 많이 바뀐 걸 느끼고 있다. 마흔에는 쉰에는 무엇을 얻고 잃게 될까. 지금보다 더욱 성숙해져 있을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