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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24. 2020

내 삶의 전환점 3가지

9일 차 자기발견

시간을 인생이라고 했을 때, 삶을 길게 살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기심이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의욕과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입니다. 변화를 위해 자꾸 시도해보고 도전하는 자세가 오래 사는 방법도 되지만 젊게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63p


고등학교 때 시간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시간에 관한 여러 주제 중 특히 '나이가 들면 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란 주제에 눈길이 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가 경험한 시간은 축적된다. 이렇게 쌓인 세월이 방대하고 길게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 두 달의 시간은 굉장히 짧아 보인다. 이 책에서도 손바닥 자서전 특강에서 언급한 '변화'를 행하라고 강조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매일의 경험이 새롭게 느껴지려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지 않을까. 나의 경우 어릴 적부터 호기심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세 가지 전환점이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원을 알고 싶다는 열망을 부추겼다.



1. 뱀파이어와 뱀파니즈 이야기


부모님의 이혼 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시기에 일이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직원분이 종종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오는 언니라 해서 이름 대신 '회사 언니'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호칭이지만 돌봐주신 분도 개의치 않아해서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름처럼 불렀다. 회사 언니는 가끔씩 집에 와서 음식을 해주거나 알파벳 공부를 도와주곤 했었다.


나는 회사 언니와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는데, 엉뚱한 상상에도 진짜처럼 받아주며 내 얘기에 귀 기울여줬기 때문이다. 한 번은 대런 섄이라는 판타지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 뱀파이어에 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회사 언니, 사람들이 뱀파이어를 무섭고 나쁘게 생각하는데 사실 뱀파이어는 착하데. 책에서 봤는데 원래 뱀파이어는 아주 조금씩만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데, 뱀파니즈가 사람이 죽을 정도로 피를 빨아먹어서 뱀파이어를 안 좋게 생각한 거래."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아냈다는 기쁨에 뱀파이어는 이렇고, 뱀파니즈는 이렇다며 조잘댔던 것 같다. 회사 언니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신기하다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상한 것들을 맘껏 얘기할 수 있었던 경험 덕분에 나는 자라면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2. 마이클 샌델의 교수법에 반한 학창 시절


"독서토론 동아리에 들어가 보는 게 어떻니"

당시 국어 교과목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내게 독서 동아리를 소개해줬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외부활동에 소극적인 편이라 처음엔 망설였지만, 선생님이 좋았기 때문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 학기 동안 4~5번 정도 진행했었는데 기존에 접하지 못한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중에서 가장 처음 읽었던 책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보기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맨 첫 장에 나오는 트롤리 딜레마 사례만은 재밌게 읽었다. 유명한 사례이기도 해서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차가 궤도를 따라 달린다. 그 궤도 앞에 5명의 인부들이 있다. 그대로 두면 전차는 5명을 치어 죽일 것이다. 전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레버 옆에 당신이 서 있다. 만약 레버를 당기면 전차의 방향은 바뀌고 5명은 산다. 그런데 다른 궤도에는 1명의 인부가 있다. 당신이 레버를 당겨 궤도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1명은 죽을 것이다. 과연 어떤 행동이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마이클 샌델의 강의 영상을 보며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특유의 교수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샌델 교수가 학생들을 지목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왜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대며 이유를 말하는데, 샌델 교수는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는 대신,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죠.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꼬리를 물며 질문에 답하다 보면 모순적인 말을 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내면에 여러 철학적인 관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단순히 사건을 볼 때 '이것이 좋다, 나쁘다'의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뿌리를 먼저 찾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사고 실험을 통한 접근방식을 개인적으로도 시도해본 적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는데, 결론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남았다.


그 결론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논리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내가 짧은 시간에 이런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오랜 역사부터 세상에 대한 이론들을 정립해온 철학을 일찍부터 배웠기 때문인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이클 샌델의 저서를 읽고 또 읽으며 철학과 사고를 연결하는 법을 익히려 했다. 이때부터 세상을 겉핡기식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 아래의 진실을 파고드는데 열중했다.



3.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


작년 하반기 공채에서 떨어지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류접수 시기에 자소서를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 바로 제출했었는데,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취업준비를 혼자 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지푸라기 심정으로 멘토링을 듣게 됐다. 사실 이전에도 자소서 첨삭을 거금을 주고 일대일로 받기도 했고, 하반기 초에는 유료 취업스터디를 신청했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합격 자소서의 예시를 따라 쓰는 방식이다 보니 내 이야기를 넣으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취업스터디에 리더분이 이대로 하면 모두 취업된다는 식의 단언하면서, 내가 겪어왔던 삶을 합격과 불합격 요소로 규정하는 것만 같아 불쾌했었다.


서류 합격이란 기준으로 내 삶의 한 부분을 '게으르고 의미 없는 활동'으로 분류해야 할까. 나는 '취업'이란 관문까지 들어가는 방법이 아닌 그 후의 삶, 즉 어떤 인생을 살아야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제까지 받았던 취업교육은 이런 물음에 답해주지 못했다. 우연히 자소서를 쓰는 방법을 찾는 중에 이런 물음에 답을 한 브런치 글을 발견했다. 나는 그 매거진을 끝까지 읽은 후 망설임 없이 멘토링을 신청했다.


멘토님은 첫날부터 인공지능 도입으로 기업에서 인원을 감축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해주었다. 나는 왜 암울한 얘기부터 꺼내나 싶어 거북했었다. 하지만 매주 만나기 전 필수적으로 읽으라고 권해주신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면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 타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처음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앞으로 '노동의 종말'로 도래될 무용 계급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선 지금처럼 안일하게 살면 안 됐던 것이다. 이제는 취업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원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의 문제였다.


멘토링을 마치고 난 후 나는 어떤 회사를 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했고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잡았다. 하나는 나만의 무기를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는 도전이 주어지는 회사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같은 것으로 보고 직원 한 명 한 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회사이다. 한편으로 회사 밖에 나오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했다.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커리어를 걷고 있는 사람과 컨택해서 커리어 플랜을 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 욕구가 강하면서도 함께하는 힘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현재 후자의 일을 해오고 있고 이제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는 기업을 찾을 시기에 있다. 현재는 코로나 19 상황으로 채용시즌이 미뤄지고 있고, 스타트업과 같은 중소 규모의 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히 밟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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