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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22. 2020

타인에게 무심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7일 차 자기발견

타인에게 무심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


어떤 사람은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안타까워하는데 무덤덤한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속상해했다. 나는 타인에게 무심하지만 한편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무심한 성향과 정 많은 성격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의 잠깐 스쳐 지나가는 표정도 알아챌 만큼 예민한 사람이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했다. 상대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엔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서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관계가 천천히 농숙해지기까지 필연적으로 부딪혀야 할 오해와 다툼을 거쳐 이해의 단계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내가 감정적으로 메마른 사람인 것만 같아 상대에게 미안했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중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좋은 행동을 따라 하기로 했다. 심리학에선 우리 뇌에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거울 뉴런은 관찰자가 다른 개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로, 마치 자신이 스스로 행동하듯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이 신경세포 덕분에 인간은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고, 모방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 나는 이 이론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상대가 내게 보여준 좋은 태도를 익히려고 노력했다.



좋은 사람의 태도를 체화해가는 것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고 표현했는데, 내게는 오히려 옷깃이 이슬에 닿아 조금씩 스며드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랜 시간 카페에 앉아 있으면 커피 향이 코트에 배여 집에 와서도 그 향이 남아 있는 것처 좋은 사람들 곁에 머물면서 그 사람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체화해가는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상대를 대하는 언어와 표현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첫째는 상대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고마워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는 이런 점에 어려웠었는 데 OO 씨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해진 것 같아요.'식으로 상대가 내게 준 도움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감정표현이 익숙지 않은 내게 담담하면서도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이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한다. 말할 기회가 없다면 글로 남겨서라도 마음을 전했다.


이런 진심이 상대에게도 닿았는지 짧게는 3개월 조금 길면 6개월간 만났던 분들께 '진솔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에 근무하면서 만났던 동료에게선 '첫인상보다 끝에 여운이 남는 사람'이란 말을 해줬는데, 그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지나간 자리에서도 향이 남아 긴 여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둘째는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일 년이 안 됐을 무렵, 친구가 단톡 방에 힘내라는 말과 함께 기프티콘을 보낸 적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라 꽤나 놀라면서도 선물을 받았다는 기쁨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걸로 기억난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선물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종종 군것질이 하고 싶을 때 편의점을 들리곤 했는데, 여유분을 챙겨 팀원들 책상 위에 종종 놓아두곤 했다.


'제가 드린 거예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가장 먼저 앉아 있는 걸 아는 팀원들은 자리에 올려진 작은 선물을 보고 내가 준 것임을 알아차렸다. 동료가 오늘따라 피곤하다거나, 유달리 지쳐 보이면 점심때 시간 내서 음료를 사다 놓기도 했다. 뜻밖에 선물을 받았을 때 그 기쁨을 알기에 주변 지인과도 이런 기쁨을 나눠주고 싶었다. 이런 작은 선물 덕에 얘기 나눌 일 없던 직원분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됐고, 일 때문에 잠시 서먹해졌던 관계도 풀 수 있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을 얘기하던 중에 친구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적응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헤어지고 나서 늦은 밤에 '그동안 고생했어, 핫 초콜릿 마시면서 기운 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핫 초콜릿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선물을 발견하고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친구는 아침에 기프티콘을 보고는 고맙다며, 주말을 잘 보내라는 톡을 보내왔다. 나는 톡을 보며 미소를 지었을 친구의 얼굴이 상상이 되었다.


무심해서 힘들었던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위로하는 말을 건네는 게 서툴던 나는 작은 행동으로 상대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태도들을 배우려고 한다. 무심하면서도 정이 많은 모순적인 성향도 조금씩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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