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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21. 2020

내게 부끄러움을 준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6일 차 자기발견

이진선 작가님의 '쓰는 삶을 살다' 브런치 북을 읽고 나의 독자가 누구인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내 얘기하기에만 집중하느라   읽는 독자를 염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읽고 꾸준히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구독해주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가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


나에게 부끄러움을 준 책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책 중 하나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궤를 같이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역사란 객관적인 사의 나열이 아니라 현대에 살고 있는 역사가가 현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따라 재구성된 것임을 의미한다. 이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관점으로 볼 때 개인 또한 과거를 볼 때 현재 시점에서 가진 가치관과 신념이 과거를 재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책이 부끄러움을 줄 수 있구나'를 알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은 후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노인 토니 웹스터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로부터 유언장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언장에는 토니의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는 일기장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면서 젊은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낸다.


토니가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게 된다. 그 사실이 언짢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축하한다는 편지를 두 연인에게 보낸다. 그 편지가 어떤 파국을 초래했는지 모르고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라 생략하고 내가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유는 그가 노인이 되어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점잖 축편지를 보냈다고 했지만 나중에 베로니카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 실제론 두 연인에 대한 원망과 저주의 편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구글 드라이브를 정리하는 중 대학시절에 발표를 준비하면서 같이 공유했던 문서 파일을 발견했다. 예전에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져 파일을 열었다. 팀원들이 자료를 정리한 글 가운데 내가 단 코멘트가 눈에 띄었다. 나는 코멘트를 읽고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이렇게 날카롭게 얘기했단 말이야? 당시 나는 팀원들이 의견을 내지 않고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답답했었다. 불만이 많았지만 최대한 이런 식으로 해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던 걸로 기억했다. 하지만 실제 내가 쓴 글은 과거의 기억과 전혀 달랐다. 문서에 작성된 코멘트의 말투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냉정했다. 대학시절 나는 발표의 퀄리티만 중요하게 여겼고 팀원이 고생한 노력에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토니 웹스터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를 미화시키고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팀원의 얼굴에 비친 불만을 알아챘다면 사과를 하고 틀어진 사이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이기심에 팀원에게 모질게 굴었던 과거를 반성했다. 이후 갈등이 생기더라도 내 위주로 해석하려는 것을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론 감정이 격해지면 나만 억울하고 한없이 상대가 악당인 것처럼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감정이 가라앉고 침착해지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환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이렇게 상대가 한 행동과 내가 한 행동을 나란히 놓고 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상대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부딪혔을 뿐이란 걸 이해하면 이를 맞춰나가느냐 아니면 거리를 두느냐에 문제로 바뀐다. "자신을 미화시키려는 행위를 경계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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