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은 불이 켜졌던 날

by 코모레비요이


네팔에서 3박 4일 동안 해발 3,210m의 푼 힐(Poon Hill) 트레킹을 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조금 조용해졌다. 포카라에 잠시 머물렀다가 카트만두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푼 힐 트레킹 내내 함께 걸었던 네팔 여대생 세 명과 며칠 더 어울려 지냈다. 다들 나보다 어렸고, 여고생처럼 까르르 웃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스럽고 희망에 가득 찬 귀요미들!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며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풀어졌다.


산에서 함께 먹는 아침 식사


그렇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거의 쉬지 않고 바로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다음 장소로 옮기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방콕에서는 며칠 동안 비슷한 하루를 반복했다. 식당에 가고, 카페에 가고, 관광지를 걷고, 저녁이면 재즈 바에 들러 공연을 보고 맥주를 마셨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쉬는 것도 아닌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사람도 많고 소리도 컸다. 도시 전체가 계속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 안에 있자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 혼자라는 감각이 다시 또렷해졌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져서 크라비로 갔다. 작은 섬들을 오가며 며칠을 보냈다. 어느 밤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진 친구와 바다에 들어가 별을 보며 한참 떠 있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덕분에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치앙마이로 향할 수 있었다.


치앙마이는 방콕보다 조금 느리고, 공기에서 풋풋한 풀 내음과 매연 냄새가 동시에 나는 곳이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무심코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전단지 하나를 봤다. 낡은 전신주 박스 같은 곳에 꼬질하게 붙어 있던 종이였는데, 이상하게 눈이 갔다. 전통 태국 마사지 스쿨 광고였다. 마침 치앙마이 생활이 무료해지던 참이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을 해봤다.


그때 ‘이거다’ 싶었다. 그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날은 망설이지 않았다. 카페를 나와서 바로 마사지 스쿨을 찾아갔고, 즉흥적으로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레벨 1 수업에 등록해 버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나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마사지 스쿨 첫날에는 마사지 자체가 사실 많이 낯설었다. 사람들의 몸을 만지는 일이 어색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걸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손을 어떻게 둬야 할지도, 어느 정도의 힘이 맞는지도 몰라서 헤맸다.


첫 수업 날에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그 친구가 커들링 파티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다음 날 수업이 끝난 뒤 그 모임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는 아무렇게나 몸을 만지지 않았다. 먼저 서로에게 허락을 구했고, 어떤 터치가 가능한지 천천히 이야기했다. 손을 대기 전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모든 과정이 일종의 리추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만지는 일이 이렇게 조심스럽고 존중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커들링 파티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서 넘실거렸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렇게 따뜻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깊게 남았다. 몸으로 교감하는 일이 부끄럽거나 위험한 게 아니라, 충분히 안전하고 다정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 경험 덕분에 다음 날부터 마사지를 배우는 시간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이전보다 덜 긴장했고 손을 움직이는 일이 덜 무섭게 느껴졌다. 마사지를 배우는 게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마음이 스쳤다.



아, 이거 하면서 살면 살아도 되겠다.



확신한 건 아니었다. 다만 작은 불이 하나 켜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내 삶을 갑자기 바꿔놓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이 불을 어떻게든 지켜보고 싶어졌다.





* 이 시리즈에 함께 올리는 사진들은 모두 여행하면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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