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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삭제한 대화까지 보존하라? 오픈 AI의 딜레마

뉴욕타임스 vs. OpenAI 소송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2025년 5월 13일,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이 내린 명령 한 줄이 기술업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오픈 AI는 사용자 대화 기록을 모두 보존해야 합니다. 삭제된 대화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사용자들이 증거를 지우고 있을 가능성”을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오픈 AI는 이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삭제 요청과 임시 대화 기능은 사용자 중심 설계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무력화하는 명령은 명백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논리입니다. 기업 고객들에게는 계약 위반과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논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유료 콘텐츠를 우회 열람한 사용자들이 흔적을 지우고 있을 수 있다는 추정에서 시작합니다. 구체적 증거는 부족하지만, 법원은 오픈 AI가 자발적으로 증거를 삭제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추정만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되는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달 뉴욕타임스는 아마존과 뉴스 콘텐츠 제공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오픈 AI는 고소하면서 아마존에는 자발적으로 기사를 제공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술 기업과의 거래를 거부해 온 상징적 언론사의 변신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순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AI 학습 데이터 제공을 끝까지 거부해 온 몇 안 되는 언론사였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르몽드는 이미 AI 회사들과 유료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면서 언론업계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저항보다 협력이 대세가 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비즈니스 결정을 넘어섭니다. 뉴스 콘텐츠는 기자의 노동뿐 아니라 취재원과 독자들의 참여가 얽힌 복합적 결과물입니다. 언론사가 모든 권리를 독점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의문스럽습니다. 공공적 역할을 하는 콘텐츠라면 거래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오픈 AI는 보존 명령이 사용자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고 주장합니다. 삭제했다고 믿었던 대화가 실제로는 서버에 남아 있다면 진정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에게는 작은 유출도 치명적입니다. 신뢰는 기술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지는 법입니다.


ZDR(Zero Data Retention) 옵션은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일반적으로 API 입력과 출력 데이터는 30일간 보존되지만, ZDR을 신청한 고객의 경우 데이터가 처리 시간 동안만 시스템 메모리에 존재합니다. 응답을 생성한 후에는 즉시 삭제되어 어떤 영구 저장 장치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ZDR은 자격을 갖춘 사용 사례와 추가 요건을 충족한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선별적 서비스입니다.


이 사건은 공정 이용(fair use) 개념에도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공정 이용은 본래 비판, 논평, 뉴스 보도, 교육, 학술 연구를 위한 예외 조항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법원은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사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질, 사용된 부분의 양과 실질성, 원작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입니다.


AI 학습에서 공정 이용 판단은 특히 복잡합니다. 상업적 목적이지만 변형적 사용(transformative use)이라는 성격을 갖기 때문입니다. 변형적 사용은 원작과 다른 목적이나 성격을 가진 새로운 표현이나 의미를 추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AI가 학습한 콘텐츠와 유사한 결과물을 생성할 때는 원작의 시장을 대체할 위험이 있습니다. 교육이나 연구 목적이면 공정 이용이 인정되기 쉽지만, 거대 기업의 상업적 AI 훈련은 다른 잣대가 적용됩니다.


뉴욕타임스는 공정 이용을 문제 삼아 오픈 AI를 고소하면서도 다른 플랫폼에는 자발적으로 기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공정 이용의 근본 원칙을 흔들고 있습니다. 약자를 위한 예외 조항이 이제는 거대 기업들 간의 협상 카드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사들에게 이 상황은 더욱 복잡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을 상대로 편집권 투쟁을 벌이는 사이 소비자들의 뉴스 소비는 이미 AI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학습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플랫폼과의 과거 싸움에만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소유권의 경계가 흐려지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뉴스는 누구의 것인가, AI가 학습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사용자가 삭제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기존의 법과 윤리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변화를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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