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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r 29. 2020

09. 코로나가 거셀수록, 봄은 따뜻해서

공시생 펜을 들다

3월 21일로 예정되었던 시험이 미뤄지고

조금은 쉬어도 된다는 안도감과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오갔다


먼 곳을 보고 걸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잠이 들어도

다음 날은 그 먼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보는

취약한 내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코로나 관련 경보 문자와

숱한 절망과 희망 속에 평범해져 가는 처음의 걱정들

열일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시험에 나올까?)

가끔은 착각일지라도 믿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믿어버리고 마는데

지금 조심스레 숨을 쉬며 바라보는

봄의 아름다움이 꼭 그렇다


지난해에는 몰랐다

꽃 한 송이를 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벌과 나비가 부지런히 허공을 오갔는지

나무줄기에 굴곡진 깊은 그을음들이

얼마나 많은 죽음과 다독임으로 완성된 것인지


한쪽에서는 마스크를 창고에 쌓아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건, 사고는 발생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은 더욱 지켜내야 하는 시간들


아파트 그늘 아래 혼자 핀 꽃나무. 얘만 형광핑크색이었다!

여든다섯이 되신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몰래 쥐어주려고 한 오만 원

늦은 밤 몰래 엿들은 부모님의 딸에 대한 걱정


미안하고 슬픈 와중에도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엉망 같은 이야기 속에서

봄은 어쩌자고 찾아와 버려서

가락을 벌려 한 움큼 

희망과 꿈을 주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내려앉는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 게

우리의 유일한 특기일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지키고 싶은 사람, 돌봐주고 싶은 마음들

펜을 드는 어떤 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만나 유머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가며 오래오래 해야 하는 일은

미움을 미워하지 않고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는 일

무엇이 오든 당연하게 주저앉지는 않는 일


나는 이 속에서도 잘 살려고

눈을 부릅뜨고 더욱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본다

더욱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고

떠나가는 삶들에게 있는 힘껏 애도를 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삶으로도 부끄럽지 않도록

다가올 4월의 투표도 잘하고

공부도 착실히 하는 본분을 지켜가기로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런 일들을 여전히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 걸

적어도 나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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