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거실에서 가볍게 리듬을 타고 있는데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너는 참 엉뚱하다. 외할머니 닮아서 그런가 봐"
엄마는 내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발견하면 주로 아빠, 친할머니, 외할머니에게서 닮은 점을 찾곤 했다. 분명 뒤를 돌아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춤추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 소리가 없어 뒤돌아보니 춤을 추고 있었다고.
맞다. 나는 외할머니를 닮았다. 말장난을 좋아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털털하고 엉뚱한 모습이 영판 없다. 외할머니와 처음부터 가까웠던 건 아니다. 친할머니와 함께 자랐고 외가댁은 울산에 있어 볼 기회가 드물었다. 어짜다가 만날 때마다 살쪘다고 해서 피해 다니거나 뒤에서 눈을 흘겼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살쪘다고 하면 정말 큰일이라는데 그 당시 우리 남매는 모두 비만이었고 나는 지금도 통통하지만 그때도 몹시 통통했다.) 그러다가 20대 중후반 어쩌다 할머니댁에 가는 건 사실 옆 집이었던 사촌동생과 놀기 위함이었는데 머물며 대화를 나누며 관계가 살가워졌다. 어쩌다 만나는 할머니와 내가 대화소재가 많지는 않아서 함께 소파에 앉아 트로트 티브이프로그램 보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애정표현을 듬뿍 해주셨다. 나에게 네가 여기 와서 선물이라는 말도.- 이 말을 들은 엄마와 이모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며 놀라셨다.
할머니와 며칠 지내다 보니 대충 살림을 하고 농담을 던지며 웃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엉뚱하고 솔직한 할머니. 아들은 아무 소용없으니 딸만 낳으라고 하지만 멸치볶음은 외삼촌이 먹어야 되니 먹지 말라는 모순을 가진 우리 할매.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신지 일 년이 되어 간다. 보고 싶고 그리워도 마주할 용기가 안 나고 나 살기 바빠서 가지 못한 세월이 그만큼이다. 드디어 다음 주에 뵈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