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울 Mar 07. 2024

이 정도면 좋아하는 거지

어떤 말은 듣고 나서야 듣고 싶었던 말인 걸 깨닫는다. 심지어 간절하게 바랬었나 보다. 할아버지가 이 말을 해주자마자 무언가 정화되는 것 같았으니. '이 정도면 좋아하는 거지'라고 나에게 말해줬을 때가 그랬다. 혼자 온 나에게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아울이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오네"


  사정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이제 주 3회는 못 나와요


"그렇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하는 거 보면 재밌나 본데? "


  네 저 진심이에요! 진짜 재밌어요. 그동안에는 같이 치던 사람들이 없어서 쫌 그랬거든요.


"응 재미없으면 진작에 안 나왔을 거야. 이정도 다녔으면 좋아하는거지.

칠 사람이 왜 없어. 저기 저기 저 사람들이랑 치면 되지!  "


   맞아요. 저분들과 한 게임 하러 가실래요?


"가자"


이게 오늘따라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 핑계로 배드민턴을 꾸준히 하지 않은지 5개월도 째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날씨 때문에 안 갔고, 발바닥이 아픈 것 같았고, 왠지 가기 싫었다. 또 같이 치던 멤버들이 흩어졌기에 재미가 시들해지기도 했고. 그 와중에 은근히 소외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실력 부족이라 그런가? 나와 같이 쳐주던 날라다니시는 할아버지와 운동 시간이 맞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치님이 좋아서 다른 반으로 옮기긴 죽어도 싫었다. 


처음엔 친구들도 생기겠지, 할아버지도 마주치겠지, 실력도 오르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전에 함께 하던 멤버들이 너무 잘 맞고 유쾌해서 혼자 남은 기분이 더 쓸쓸한 것 같다. 아무 것도 빠른 시일내에 이런 일들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통제 불가능한 상태일 뿐이다. 


레슨 받는 날이면 체육관 가는 게 고민이 됐다. 하고 싶은 맞는데 가기 싫은 마음도 강했다. 뭐 안가도 누가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딱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이걸 안한다면 어떤 운동을 해야할까? 고민해봤지만 어떤 운동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이정도로 배드민턴을 잘하지도 못하는데 좋아하고 있었다. 마냥 이렇게 뭔가를 좋아하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가.


2월엔 어정쩡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갔다. 코로나 이후 함께 다녔던 꾸준한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 어른들이 나에게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냐'라고 반겨주셨다. 같은 또래는 없어도 같이 쳐줄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조금은 고쳐 잡았다.  


요즘은 '코치님에 레슨 받는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체육관을 향한다. 그러니 훨씬 기분이 가볍고 단순해졌다. 레슨 받고 3세트 2게임하는 게 목표다. 초반에 3시간 이상씩 했던 과욕도 조금은 잠재웠다. 이렇게 해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지속 가능한 리듬을 찾아나가야 겠다. 


할아버지는 나와 마지막 게임을 해주고 먼저 귀가했다. 내가 보기에 레슨자 중에 제일 잘 치는 연장자인데 나를 보며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게 고마웠다. 내가 좋아도 그만인건데, 남이 말해주니 더 좋다. 내가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마저 좋아하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드민턴은 불륜의 온상이라던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