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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Sep 19. 2024

시댁에 감사한 며느리가 되다니

명절

청산도 산어귀를 지나는 구름

결혼 후 첫 번째 명절인 추석. 대가족의 거나한 제사상을 준비하는 건 우리 쪽이라 나는 무엇을 보고 겪어도 준비가 다 된 상태다. 몇 십 년간 며느리들의 요리와 끊임없는 설거지, 부대껴 자는 잠자리도 문제없다. 그렇지 않은데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오히려 남편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결혼 전부터 어른들끼리 명절을 각자 보내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는 명절은 각자 보내기로 결정됐다. 대신 모든 일가친척이 모이는 날은 합동제사 때로 정했다. 조용해질 명절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둘 중 선택하라고 하면 무조건 각자지. 엄마의 고단함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정리정돈. 손님의 입장에서는 늘 좋기만 한 명절이지만 할아버지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 집은 여전히 호스트였다.


반대로 남편은 전을 부쳐보거나 먹어본 적이 기억이 안 날정도라고 했다. 명절 때에도 평소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 몇 가지만 올린다고 하셨다. 제사 없는 집이라니 이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엄마 했던 일을 하지 않겠구나 안심이 됐다.


시댁이 좋으니 마을도 더 예뻐보이나..?

남편의 할머니는 청산도가 고향이다. 그래서 명절이면 청산도에서 모이고, 남편은 매번 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몇 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모임이 조금은 옅어졌다고 한다. 매번 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올해에는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힘들진 않았지만 길었다. 2시간을 차를 타고 가서 다시 배를 50분 정도 타고 항구에서 30분 정도 더 버스를 타면 도착. 고요한 시골 풍경이 우리 집과 익숙했다. 새롭거나 불편한 것도 없었다. 항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남편의 삼촌이 와 계셨다. 할머니댁까지는 차로 30분 정도였는데 30년 전의 외할머니집과 비슷해서 추억에 젖게 되었다.


우리가 가져온 소고기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남편은 내가 밥을 다 먹자마자 일어나자고 재촉했다. 이제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오겠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오빠, 아직 치우지도 않았어'라고 말했는데, 어른들이 모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보라고, 오는데 피곤했으니 이제 이곳 여행도 하고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었다. 내가 없는 게 그분들도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이게 테스트인가 혼란스러웠는데 더 하겠다고 우기진 않았다.


숙소 앞 강아지가 할머니댁까지 따라왔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즐거워서 인지 조금은 거기에 더

앉아있고 싶기도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뿐이었다. 남편이 누구 닮은 이야기나, 어릴 적 어른들이 섬에서 지냈던 이야기, 오늘 만든 반찬은 어제 뒷산 어귀에서 따왔다는 등 사소한 이야기였다. 내가 우려한 2세 이야기, 밥벌이, 요리, 집안일 같은 주제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예쁘게 바라봐주는 어른들이 참 감사했다.


집이 좁아서 잠은 숙소를 따로 구하라고 하셨다. 마침 인근에 마음에 드는 숙소가 남아있었다. 그날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도 숙소에서 쉬다가 집에 왔을 때면 밥이 전부 차려져 있었다. 아직은 가족이라기보다 손님 같았다. 앞으로는 어떨까 싶지만 결혼 전에 상상했던 것만큼 겁먹지 않을 것 같다. 그날 밤에 유난히 밝은 보름달에 빌 소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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