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을 읽었습니다.
얇지만 강렬한 붉은 책이었습니다.
사진과 글을 오가며 활동했던 작가 르베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자살> 원고를 보내고 열흘 뒤인
2007년 10월 15일, 파리에서 자살합니다.
책은 그 이듬해 출간되었습니다.
르베에겐 수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느 날 테니스를 치기 전,
아내에게 집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말한 뒤
지하실로 내려가 미리 준비해 둔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책은 '나'라는 화자가 친구인 '너'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하지만
대부분 이인칭 주어 '너'로만 서술됩니다.
'너'에 관한 기억의 단편들이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이 나열된 것입니다.
'너'는 결국 '나'의 분신이기도 했습니다.
르베는 '너'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끝내 마지막까지 '너'의 방식을 따르고 말았습니다.
원고를 르베 생전에 읽은 유일한 사람이었던 편집자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찬사를 건넨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자네의 뒤틀린 자화상은 아니길 바라겠네"
하지만 그의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르베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요.
타인의 자살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너무 많이 이해해버리거나,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너는 집에다 테니스 라켓을 두고 왔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것을 찾으러 집으로 돌아간 너는 평소에 라켓을 넣어 두는 현관 입구의 수납장으로 향하는 대신, 지하 창고로 내려간다. … 너는 세심히 준비해둔 총으로 머리를 쐈다. … 너는 자는 것처럼 보인다. 너는 스물다섯 살이다. 지금 너는 나보다 죽음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 11p
너는 말이 별로 없었기에 무언가를 틀린 적도 거의 없다. 너는 밖에 별로 안 나갔기에 말도 적게 했다. 가끔 외출할 때면, 너는 듣거나 바라보는 쪽이었다. 너는 이제 더는 말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옳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를 다시 살게 하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너는 여전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네 대답을 듣고, 너의 현명함에 감탄한다. 그러나 만약 네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드러난다면, 우리는 너를 잘못 이해했다고 자신을 책망한다. 너는 진실이고, 우리는 거짓이다. … 너를 알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 너는 그들 중 마지막 사람과 함께 죽을 것이다.
- 15p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 16p
내가 너에게 말을 하고 있는데, 너는 정말 죽은 것이 맞나?
… 너는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말하는 한 권의 책이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 17p
누군가 자살했다고 들을 때면, 나는 너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누군가 암으로 죽었다고 하면, 나는 암으로 죽은 내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과 죽음을 공유한다.
하지만 너는 자살의 주인이다.
- 18p
너는 나이가 들수록 덜 불행해지리라 믿었는데, 그때가 되면 슬퍼도 되는 이유가 있게 되리라 생각해서였다. 아직 젊었던 너에게 네 고통은 위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네가 보기에는 이 고통에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 21p
너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너는 죽음을 추월했지만, 진실로 원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모르는 것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삶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미지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있었고,
만약 다른 쪽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여기보다 나으리라고 확신했다.
- 24p
오직 살아 있는 자들만 일관성이 없는 듯하다. 죽음은 그들의 삶을 구성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종결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체념한다. … 네 죽음이 네 삶에 일관성을 부여했다.
- 25p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은 너의 죽음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최후의 행동이 너의 전기를 뒤집는다는 것이 묘하지 않은가?
나는 너의 죽음 이후로 단 한 사람도 네 이야기를 할 때 네 인생의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 37p
우리는 땅의 모든 것에 입 맞추고, 땅의 모든 열매를 맛보고,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한다.
너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러한 환상들을 거부했다.
- 38p
너는 모임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잘 지내?"라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 45p
너는 너무나도 완벽주의자인 나머지 완벽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하고 싶어 했다. …
가끔 완벽함을 완벽하게 하는 데 지친 너는 네 작업물을 파괴하거나 끝내지 않고 그저 포기해 버리고는 했다.
- 46p
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은 폭력을 너 자신에게 행사했다.
그들을 위해서는 인내와 관용을 아끼지 않았다.
- 60p
너는 스무 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죽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만약 너에게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특별한 의식 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 나중에 네가 나에게 인용한 문구가 있었다.
"죽음은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다. 아무도 그곳에서 돌아와 그 나라를 묘사하지 않았다."
- 66p
너는 너의 미래를 알고 싶어 했는데, 그것은 네가 무엇이 될지 앎으로써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라기보다는,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예측해서 살기 위해서였다.
너는 네 삶의 모든 날짜가 죽는 날까지 적힌 완벽한 스케줄 수첩을 꿈꿨다.
- 67p
너는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해 너무나 자주 생각한 나머지 이제는 그것을 친숙하게 느꼈다.
- 70p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화창한 날씨, 더위와 햇볕은 너에게는 외출하라는 초대, 고독에 대한 방해, 기쁨에 대한 의무와도 같았다. 너는 행복이 날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거부했다.
너는 그 행복의 유일한 책임자이고 싶었다.
- 71p
그는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숨 쉬고, 마시고, 먹는 육체 안에서 무력해지는 것. 천천히 자살하는 것.
- 73p
너는 약을 먹음으로써 느끼는 행복감이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흥분 상태 다음에 오는 쇠락의 단계는 전보다 더 강렬했다. 너는 너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고, 약이 너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의가짜 행복은 네가 자유의지를 잃게 할 만할 가치가 있었던가?
- 78p
너는 시작 단계에서의 욕망이 쾌락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선호했다. … 시작을 좋아하는 네가 자신을 지워버린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자살은 끝이니까 말이다. 아니면 너는 그것을 시작이라고 판단했을까?
- 79p
너는 밤에, 시간이 흐르는 것을 덜 의식했다. 도시의 과제는 내일로 미뤄졌다.
어떠한 사회적인 행위도 할 필요가 없었고, 더는 아무것도 너 자신에게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너는 죄책감 없이 사색적으로 되었고, 피로를 제외하고는 이를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85p
너는 혼자 있을 때 지루한 것과 여럿이 있을 때 지루한 것을 두려워 했다. 하지만 너는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지루한 것을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워 했다. 너는 자극이 없는 기다림의 순간들에 어떠한 미덕도 부과하지 않았다. 너는 이곳에 부재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과 생각만이 네 삶을 이룬다고 판단했다.
- 90p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네 아내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 너는 네 행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그를 바라본 순간에 네가 그곳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해했다. 그는 너의 거울이었다.
- 92p
너는 네 지인 중 몇 명은 네 죽음의 선택을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네가 살고 싶어 하도록 도와주지 못한 것을 개탄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너를 제외한 그 누구도 너에게 죽음보다 큰 삶에 대한 의욕을 줄 수는 없었다. …
너는 다른 사람이든 혹은 너 스스로이든 상관없이 누가 시켜서 행복해질 수 없었다.
- 94p
너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네 아내는 네게 아이들을 원하느냐고 물어봤다. 너는 네가 아직 성숙하지 않다고 느꼈고, 언젠가는 준비가 될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불가사의한 행동인 나머지 너는 지혜롭게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이 네 한계를 넘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너는 부모가 너를 가졌을 때 너의 오늘날보다 더 이성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택의 이기심과 경솔함을 생각하는 것은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96p
나는 너를 떠올리면서 고통받지 않는다. 나는 네가 그립지 않다. 너는 우리가 함께 나눴던 삶 속에서보다 내 기억 속에서 더 현존한다. 만약 네가 계속 살아 있다면 너는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죽은 너는 살아 있는 것만큼이나 선명하다.
- 97p
태어나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사는 것은 나를 차지하는 일이고
죽는 것은 나를 끝내는 일이다
…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 ('너'의 글 中) 107/ 1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