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아직 열일곱이다

선망하던 단짝 친구의 죽음

by 이천형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떤 사람은 평생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제겐 도현이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도현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난 아이였습니다.


네모난 뿔테 안경을 쓰고,

늘 머리를 하나로 묶고,

말수가 유난히 적었습니다.


조용했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툭툭 던지는 말이 묘하게 웃겼고,

성적은 늘 전교권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 애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끌림이 있었거든요.


도현은 아디다스를 좋아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샤프로 아디다스 로고를 그려놓았고,

아디다스 츄리닝 저지와 바지를

종류별로 소장해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야마자키 타케시의

'푸른 머리 무' 캐릭터를 좋아했습니다.

필통도 그 무 모양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취향이 확고한 그 아이가

그렇게 특별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


외향적인 저의 집요한 애정 공세 끝에

도현과 저는 결국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제가 어울리던 친구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었습니다.


'I ♡ Girl'이 크게 박힌 원피스를 입고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적당히 튀고 적당히 착한 아이들.

그 나이답게 노는 아이들이었죠.


제가 도현이 좋다며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들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생일파티도 다 같이 했고,

하굣길에 발견한 폐가를 아지트로 삼기도 했고,

초등학교 졸업사진도 다 함께 찍었습니다.


어릴 때라 시간이 더 느리게 흘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도현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온 날,
저는 그 애가 부잣집 늦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현의 어머니는 상냥하셨습니다.
과할 만큼 음식을 차려주셨고,
도현이에 관해 이것저것 물으셨습니다.

최근 도현이 부쩍 밝아졌다며 기뻐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그 애의 방 구조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도현은 머리맡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두고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책 내용을 묻자

도현은 간만에 눈을 빛내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꽤나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왁스럽고 해맑기 그지없던 저에게
그 애의 모든 것이 낯설고 신비로웠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애를 선망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저는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여러 번 옮겨 다녔기에
이사와 전학은 늘 익숙하면서도 지긋지긋했습니다.


도현과는 가끔 네이트온으로 연락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무렵 저는 빅뱅을 좋아했고,

도현은 소녀시대가 좋다고 했습니다.

멤버들의 대화가 재미있다며 영상을 보내줬던 기억이 납니다.


도현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했던 J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되며 다시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에 적응하며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도현이가… 죽었대.”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속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그날의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고,

반가워할 새도 없이 울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열일곱,
처음으로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얼마나 많이 힘들었던 걸까?

내가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더 자주 연락했다면 뭔가 달랐을까?


그 애의 힘듦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저를 붙잡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도현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나눈 대화였습니다.



“안 아프게 죽는 법을 알아냈어.”


“뭔데?”


“수면제를 갈아서 잼이랑 섞는 거야.
식빵에 발라서 먹고 자는 거지.”


“윽. 그런다고 죽을까?

넌 뭐 그런 생각을 하냐.”



사실 도현은 이미 그때부터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커터칼로 종종 팔등에 희미한 생채기를 내

제가 진저리를 치며 뭐라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하나도 안 아프다며 웃던 도현의 표정.


한참이 지나 알게 됐지만

그건 전형적인 자해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도현의 친구 J가 도현보다 딱 한 달 먼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마 두 친구는

서로의 우울을 나누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끝내 같은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저는 더 자주 도현을 떠올렸습니다.


학업 스트레스도 없고

어딘가에 얽매일 필요도 없이

그저 자유롭고 즐겁기만 한 대학생.


이런 것들을 하나도 겪어보지 못하고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도현과 술 한 잔도 함께 마셔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아쉽습니다.


도현은 종종 제 꿈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뿔테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는 게 신기합니다.


도현의 이야기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지금도 쉽게 꺼내지 못합니다.


그녀가 보고 싶어
무작정 춘천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만났다면
우리는 더 자유롭게 가깝게 지냈을 텐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도현을 떠올리면 종종 눈물이 났습니다.






서른이 넘어
제가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
그 애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유난히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는데,

늘 어딘가 미련이 없고

세상으로부터 한 발쯤 물러난 것처럼 느껴졌던 그 아이.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그때의 너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비로소 그 우울의 깊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애는 너무 똑똑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고단한지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게 아닐까요?


제가 만약 죽는다면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아직 젊은데, 겪어볼 일이 많은데,
너무 일찍 떠났다고.


그때의 도현도
저에게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도현은

언제까지나 열일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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