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이머스튜던트의 후기
중학생 시절 영수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어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곤, 난데없이 비장하게 '앞으로는 영어보다 중국어를 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선언했다.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중국어의 중요성을 역설力說 하는 역설逆說을 아주 가볍게 귓등으로 흘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삼십년이 지나 자신이 중국어를 공부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채. 사람이란 그러고 보면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아무튼, 여차저차 중국어를 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눈앞에는 다가왔다. 2021년 초 중국행을 결정하기 직전까지 나는 여느 한국인과 다르지 않게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 순종적으로 채색된 '반중감정'의 한국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치 못한 선택지였던 것이다. 이전의 제2외국어 - 프랑스어, 일본어, (심지어) 러시아어- 학습의 도전에서 보기 좋게 실패한 경험이 있는터라, 중국어 공부에 취미를 가질 수 있을지 상당한 의심을 품고 여차저차 학습을 시작했다.
동북지방에서 온 중국어 선생님은 경기도 부천에서 유학을 하고 이제는 한국말을 어렵잖게 할 수 있는 분이었다. 여의도에서 ㅊㅇㅎ 어학원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은 이미 수 많은 직장인들을 겪어본듯 '보살'같은 마음을 가슴에 품은 분이셨다. 다시생각해도 지지부진한 학습자를 묵묵히 이끌어 나가는 그녀의 일관됨이란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시간 온라인으로 수업을 꾸역꾸역 해 나갔다. 이번에 중국어를 배우면서 무엇보다 새롭게 다짐한 것은 '망각'을 두려워 말고 '즐기자'는 것이었다. 어디 성적을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그저 상하이에서 살면서 밥사먹고 차 타고 다닐 수 있으면 될 정도로만 하자는 게 학습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부담없이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HSK 4급 시험도전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합격이 아직 아니다)까지 오는데 삼년이 걸렸다. 누구에게는 정말 긴 시간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짧은 시간일 수 있는 3년은...나에게는 솔직히 말하면 즐거운 학습의 과정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줄 알았으면 머리 싱싱할 때 진작 하나 더 둘껄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정말 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수업 빼먹은 날도 많았지만.
공부하는 데 시간을 따로 내기가 여의치 않은 (따로 공부할 시간을 낼리 없는) 직장인에게 학습을 계속하는 방법이 뭘까 궁리해보니 결국 '돈으로 선생님과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이 나의 시간을 계속해서 관리하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한 때는, 선생님을 세명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다. HSK 문법 선생님, 일상회화 선생님, 전화중국어 선생님. 물론 회사의 지원과 중국의 저렴한 물가에 힘 입었다. 사실 ㅊㅇㅎ 선생님 수업료가 가장 비샀다. 한시간에 4만원 정도였으니. 다른 두명의 선생님은 한시간에 대략 2만원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다른 하나의 전략은 성인학습자의 집중력 유지 시간을 고려한 수업시간 설계였다. 계속 하다보니 60분은 너무 길고 30분은 너무 짧았다. 해서 45분을 적정 시간으로 잡았다. 그리고 모든 수업은 철저히 온라인 비디오 1:1로 진행했다. 모두 시간을 절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출근시간 전, 점심시간, 퇴근후 밤에 짬짬이 공부하는 모드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론상으로는 주5회 수업이지만, 실제론 주2회-3회 수업하면 스스로 '장하다'고 후하게 칭찬해주곤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HSK 5급을 공부하던 어느 수업시간, '과연 내가 이 말을 살면서 과연 몇번이나 써먹을까' 하는 단어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꾀가 난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수업을 몇 차례 연기하고 미루고 지지부진하던 어느날, 출근길에 또 다른 전화중국어 선생님이 도발을 해왔다. (상하이니즈 그녀는 매우 책임감이 높고 그만큼 잔소리도 많은 마음착한 선생님이다.) "4급 공부 다 했다면서 4급에 나오는 단어를 모르냐. 4급만 알아도 일상회화 하는데 큰 지장 없다" 등등의 도발성 멘트를 시전해 주신 것이다. 아직도 그녀에게 잔소리를 듣고 불끈 도전의식이 타오른 순간이 기억난다. 연안고속도로의 램프로 빠져 나와 회사에 출근하던 그 흐린날 아침. 그렇게 HSK 4급 시험 도전버튼이 눌렸다. 시험은 앞으로 한달 앞. HSK4급은 때마침 가을학기부터 등록하고 싶었던 상해교통대학 어학원의 입학요건이기도 해서 도전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HSK 4급에 통과한 응시자는 여러 영역에 관련된 화제에 대해 중국어로 토론을 할 수 있다. 또한 비교적 유창하게 원어민과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다." (https://www.hsk-korea.co.kr/about/test_hsk_4.aspx 참조)
시험 전날 4급을 자료들을 새롭게 출력했다. 노트필기 없이. 과연 얼마나 내용을 알고 있는지 쭉 훑어보는데, 한시간쯤 걸렸다. 90% 정도는 알고 있는것 같았다. 사실 긴장했다. 이게 과연 몇 년만의 어학시험인지. 2008년에 취업준비하면서 TOEIC 을 본 이래 처음 있는 진지한 시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2년 전에 중국에서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한 적도 있지만, 그건 겨우 일주일/다섯시간쯤 공부하고 말았던 가벼운 것이었다). 준비가 어느정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 선생님 모두 '얼마나 높은 점수를 맞는지'의 문제이지 합격불합격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이야기 해주신만큼 특별히 긴장할 것도 없었는데. 그래도 긴장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간 머리 나빠질까바 입에 대지 않았던 와인을 두 잔쯤 마셨다. 뭐, 잠 잘 오라는 뜻에서?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여섯시 사십오분에 평소와 다름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듣기문제 예문을 듣기 시작했다. 엇?! 몇 개 우물쭈물 안들리는 게 있네?! 또 한번 긴장했다. 아내가 아침을 챙겨주었다. 그녀도 오늘 3급 시험이다. '그래 먹어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왜인지 열여덟살에 수능날 아침이 떠올랐다. 그때 난 뭘 먹었지? 점심에 어머니가 불고기를 챙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수능의 트라우마는 끈적하다. 마흔이 넘어서 다른 계제의 시험에도 그 날이 떠오르다니 말이다. 그렇게 아침을 챙겨 먹고 비장한 각오로 가방을 싼다. 여권, 볼펜, 텀블러, 안경, 그리고 시험 직전까지 볼 몇 가지 페이퍼들.
도착한 시험지에선 문득 공덕역 토플센터가 떠올랐다. 외국어 시험장 분위기는 어쩜 이렇게 분위기가 비슷한가. 시험장 주변에는 어디에서 이렇게 또 많은 외국인들이 나왔나 할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국적과 인종의 다양성에서 다시한번 놀란다. 하긴, 한국에서 외국어 시험볼 땐 한국인들 뿐이었으니. 물론, 시험장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인 것으로 보인다. 6급 시험도 같은 시간이 치러지고 있었다. 6급 시험장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또 새삼 우러러 보게 된다. 시험장은 마치 학교 교실처럼 낮은 조명으로 음습했고, 3월의 교실은 온기보다는 냉기가 감돌았다. 그렇게 배정된 C2 자리에 착석한다. 이크 이제 정말 시작이다. 역시나 질나쁜 레노보노트북과 누가 봐도 메이드인차이나 이어폰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 헤드셋이 아니라 이어폰이다. 가느다란 줄이 달린 두갈래 이어폰)
듣기 첫부분 한 문제가 무첫 헷갈린다. 내용은 들었는데, 지문의 설명이 맞는지 모르겠다. 버스는 이 시간에 오른쪽 도로로만 달리도록 되어있다. 맞나/틀리나. 고민하다 틀리다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상하이에선 버스 차선이 왼쪽이고 지문에선 특별히 오른쪽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듣기 세번째 파트 마지막 두 문제는 긴 지문 이후에 2개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인데, 어버버버 하는 사이 통째로 날려 먹었다. 두문제를 찍는다. 정말 뭐라고 말하는지 못들었다. 아휴. 듣기 시험이 끝나고 나니, 이제 좀 긴장이 누그러진다. 지금부터는 이 시험의 과정과 경험을 즐기기로 했다. 아마 또 오랫동안 다시 하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므로. 독해 부분에서 한 문제가 끝까지 괴롭힌다. 순서맞추기 문제다. 手阿姨, 表扬弟弟,礼貌,真懂...여기서 表样 은 칭찬하다로 해석해야 할 것인다, 난데없이 배양(애를 키운다는 말인가)으로 읽고 해석했다. 야무지게 틀렸다. 그 외에도 틀린게 많겠지만, 나머지 문제는 내가 맞았는지 틀렸을지 조차 모르는, 아니면 고민의 여지가 없이 답을 고른 문제들이어서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다.
이렇게 중국어 학습 3년 여정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다. 시험 성적은 4월 1일 발표다.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성경에 씌여있다던가. 그러나 결국 나는 '시험'에 들어서 더 가열차게 공부하고, '시험'으로 긴장하고, '시험'이 끝난 해방감으로 아내와 타코를 곁들여 코로나 맥주를 마신다. 말장난이지만 이 모든 여정에 코로나가 도처에 있었고, 이렇게 한병의 코로나와 쉼표를 찍는다. 지금부터는 회화에 집중해보려 한다. 가을에는 상하이교통대학에 나가보려한다. 앞으로의 학습여정도 지금과 같이 꾸준하고 즐거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