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하나의 명제에서 추론을 통해 논리들을 쌓아나가기 위해서는, 그 전제는 절대적으로 참이어야 한다고. 즉, 그는 철학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눈으로 풍경을 보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얼마나 높이 떠있는지 혹은 빠르게 날아가는지 계산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이다. 따라서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면 감각으로 전해지는 정보는 모두 거짓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한 논리는 모두 거짓이 된다.
이번에는 어떤 '악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강력한 악마는 우리의 생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악마가 '1 + 1 = 3'이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속이는 식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착각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악마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게 된다.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거나, 의심하는 것조차 악마의 속임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감각과 생각 모두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면 느껴지는 감각은 모두 거짓일 것이고, 악마에게 속고 있다면 우리의 논리적인 생각 또한 거짓일 테니까. 여기서 데카르트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더라도, 악마에게 속고 있더라도, '나'는 존재하는 것 아닐까? 모두 거짓이라 하더라도, 꿈을 꾸고 악마에게 속는 나 자신만큼은 존재하는 것 아닐까? 오히려 그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논리다.
하지만 과학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1983년, 참가자들은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버튼을 누르는 실험을 한다. 놀랍게도 버튼을 눌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버튼을 누르기 이전에, 이미 뇌에서 결정에 대한 신호를 포착할 수 있었다. 2008년 실험에서는 버튼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최대 10초 전에 그들이 어떤 버튼을 선택할지 뇌의 신호를 통해 미리 알 수 있었고, 2019년 실험에서는 여러 사진 중 하나를 선택하기 최대 11초 전에 알 수 있었다. 뇌가 우리의 생각보다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이란 건 '나'의 자유의지일까, 아니면 '뇌'에서 내리는 명령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라는 전제가 깨진다면,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