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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May 13. 2019

짊어지다

무거움을 향하느냐 가벼움을 향하느냐

책임은 무겁다. 싫다. 버겁다. 공부도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이 모든 힘든 것들을 왜 일부러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힘든 것이라면 가능하면 안하는게 낫다. 학업-취업-결혼-육아-퇴직의 뻔한 흐름에 내 인생을 집어넣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다르게 살겠다. 


다르게 살기를 원한다고 하자. 다르게 살고 싶은 이유가 현재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아니면 현재도 충분히 좋지만 좀더 무거운 의미를 원하기 때문인지를 생각해보자. 같은 헬스장에 가서 같은 무게의 아령을 들어도 무게를 갈수록 무겁게 들려고 덤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번 휘적거리다가 내던져버리는 사람이 있다. 전자에게는 근육이 생기고 후자에게는 핑계만 남는다.


10kg짜리 아령을 들다가 내려놓았다고 하자.10kg짜리를 내려놓았다는 사실은 같으나, 태도에 따라 그 다음 길이 갈라진다. 어떤 사람은 11kg짜리를 들기 위해서 10kg짜리를 내려놓는다. 또 다른 사람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서 10kg짜리를 내려놓는다. 갈수록 더 무거운 일에 덤벼드는 태도와 지금 짊어진 것을 어쩔 수 없이 짊어진다는 태도는 그 이후가 다른 방향을 향한다. 도전과 도피의 차이다. 


도전: 다음에 짊어질 짐으로 지금보다 더 무거운 것을 고른다.
도피: 다음에 짊어질 짐으로 지금보다 더 가벼운 것을 고른다. 


현재 짊어진 일이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그렇고, 내려놓기를 원한다는 것도 같고, 그래서 내려놓는다는 결과도 같다. 도피와 도전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 하는 일을 내려놓겠다면 다음 일이 현재 일보다 무거울지 가벼울지를 재어보는게 구분에 도움이 된다. 다음 일이 지금 일보다 무겁다면 도전이고, 가벼우면 도피다.


가치 (value)가 적은 것에는 에너지를 새로 집어넣어야 가치가 더해진다. 방 안이 지저분하다면 청소하는 노동을 집어넣어야 꺠끗한 결과를 얻는다.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으면 저절로 지저분해지기는 해도 반대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열역학 제 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행하려면 무거운 쪽으로 일을 넣어야 한다. 


일을 한다고 하자. 갈수록 무거운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태도라면 나와 일을 안 하고 싶어할 사람이 없다. 일을 한다는 건 가치를 만든다는 뜻이고, 인간 사회에서 발생한 가치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나와 함께 일하면 뭐 하나라도 더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사람이 많고, 내 눈에는 천지에 널린게 기회처럼 보인다.


반대로 내가 일을 갈수록 덜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이라면 나와 일을 하고 싶어할 사람이 없다. 일을 덜 한다는 건 이전보다 가치를 덜 만든다는 뜻이고, 그러면 이전에 벌던 보상 수준을 맞추기 위해 주변으로부터 뭐 하나라도 더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있을때 가치를 빼앗긴다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세상 모든 좋은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나와 일하기 싫은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갈수록 기회가 끊기고 소외되다가 심해지면 사회로부터 내팽개쳐진다.


그렇다고 일을 갈수록 더 하라니, 그렇다면 월급을 그대로 받으면서 일을 더 하라는, 그러니까 열정페이를 주는대로 호구처럼 묵묵히 당하라는 말일까? 


살펴보자. 돈이란 가치를 재는 도구다. 가치가 먼저 오고, 가치를 교환하기 위해 돈이 이동한다. 내가 가치를 더 만들었으면 돈을 더 받는 것이고, 내가 가치를 덜 만들었으면 돈을 덜 받는게 순리다. 시선을 일에 고정하고 돈을 그 일에 맞추는게 순리다. 가치가 먼저 있고, 가치를 재기 위해 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월급을 고정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시선을 일에 맞추고 돈을 그 대가로 받느냐
시선을 돈에 맞추고 일을 그 대가로 치르느냐


의 차이를 살펴보자. 전자는 프리랜서고, 후자는 월급쟁이다. 전자는 내가 해내는 일의 가치에 따라 벌이가 달라진다. 후자는 내가 해내는 일의 가치가 어떻든 일관된 급여를 받는다. 열정페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급여를 고정한 뒤에 일을 더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니 호구가 된다. 급여가 고정되었을 거라는 암묵적인 전제 위에서 하는 말이다.


월급쟁이 마인드에서는 고정된 월급에 더 많은 일을 하는건 합리적이지 않다. 값이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으니 가능하면 쉬운 일, 또 작은 일을 향하다가 결국에는 월급값을 못하는 수준까지 실력이 내려간다. 고정된 급여를 전제로 일을 급여에 맞추기 때문에 가능하면 쉬운 일을 집어들어야 나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독이 된다. 쉬운 일을 집어들수록 나는 할 줄 아는 일이 줄어든다. 내가 유능해지는 방향으로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는데 능력이 자라지 않으니 결국에는 도태된다. 현재 직장이 실제로 고정급여를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직장이 어떻든 내 태도가 무엇이냐의 문제다.


먼저 받겠다는 것인지
먼저 주겠다는 것인지


내가 먼저 받고 그만한 일을 해주느냐, 내가 먼저 주고 그만한 대가를 받느냐 하는 태도 차이다. 받는 대가가 같더라도 이 태도에 따라서 그 이후가 다르다. 내가 먼저 받기를 원하면 급여를 고정하고 일을 그에 맞추어야 한다. 같은 돈이니 가능하면 일을 쉽게 하는게 나에게 이득이다. 같은 돈에 일을 더 해주면 열정페이고 내가 손해다. 반대로 내가 먼저 주기를 원하면 일을 남에게 해주고 돈을 그에 해당하는 만큼 요구해야 한다. 일도 일이지만 때마다 다른 양의 돈을 요구하는 설득 기술 및 현재 내 몸값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감각도 필요하다. 이것을 할 줄 안다면 그만큼 유능해진다.


월급에 먼저 시선을 둔다면 결국에 그 돈을 받겠다는 것이다. 받겠다는 태도가 먼저 온다. 남에게 먼저 주지 않으니 주변에서 같이 일하자고 달라붙는 사람이 없고, 혼자서는 기회를 찾지 못하니 큰 기업에 소속되어 안전하게 눌러앉기를 택한다. 주는 건 모르겠고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리다가 결국에 그 기업이 나를 버리면 나는 갈 데가 없다. 힘든 것을 힘들다는 이유로 피하다 보면 점점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일의 크기가 줄어든다. 피할수록 무능해진다.


더 무거운 것을 해결할수록 나는 더 큰 가치를 만든다. 더 큰 가치를 만든다면 남에게 제공할 수 있고, 갈수록 많은 양의 돈을 번다. 해결하려는 일이 사람 혼자 힘으로 안 될 무게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그 일을 해결한다. 일해준 양에 따라 다른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능력도 얻는다. 시선이 일의 무게에 있기 때문이다. 짊어지고 해결할수록 유능해진다.


여기까지 본다면 내가 인생의 진로를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현재의 내가 해낼 수 있지만 현재보다는 약간 더 불편하고 약간 더 무거운 일. 바로 그 일이 내가 다음 단계로 집어들어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서먹한 관계의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귀자고 먼저 고백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벌인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는 기술도 습득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이 어떤 분야의 어떤 종목이건 간에, 지금 하는 일보다 무겁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면 그 길은 성장하는 길이다.


짐 없는 인생은 없다. 스스로 짊어지려는 무게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지금 상황이 불만인 이유는 그 짐을 내던져 가볍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그 짐이 어떤 분야나 종목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짐을 내던지고 싶은 사람은 학업-취업-결혼-육아-퇴직의 뻔한 흐름 안에 있어도 불만이고 그 흐름 밖에 있어도 불만이다. 가벼운 무게를 원하는데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일의 종류를 바꾸어 더 가벼운 일을 찾는다. 그 다음 집어드는 일도 또 가벼운 일이기를 바란다.


본인의 판단으로 짐을 짊어지고, 무게를 천천히 늘려보자. 무슨 일을 집어들든 본인의 선택과 책임이라고 보는 사람은 뻔한 흐름을 타든 다른 흐름을 타든 관계가 없다. 자기가 정한 것의 무게를 갈수록 늘려나간다는 기준만 맞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늘어난 무게만큼 나는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다. 40kg짜리 아령을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무게를 요하는 턱걸이라든지 전혀 다른 종류의 일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 


아령들기는 누구나 무겁다. 턱걸이도 마찬가지다. 팔굽혀펴기도 그렇다. 내가 하겠다는 일이 어떤 종류인지, 나에게 맞는 일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꿈에 그리던 일인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무거움을 향하느냐 더 가벼움을 향하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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