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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케이랩 Nov 21. 2019

국회의사당, 산으로 간 기획의 맨얼굴

기획의 건축 첫 번째 이야기

"나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건물을 짓지 않는다. 내가 짓기 위해 클라이언트가 있다." (아인 랜드)


약 50년 전인 1965년, 서울시는 제3한강교 건설계획과 함께 강남지구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67년, ‘한강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됐고, 그 중심에는 ‘여의도 개발’이 서게 된다. 다음해 2월에는 여의도가 국회의사당 입지로 선정됐다. 관청들이 들어선 세종로의 반경 5km 이내에 있고, 번잡한 도심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1969년 5월에는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의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었다. 여의도에 국회의사당과 시청, 대법원, 주거지 등이 망라된 기획이었다. 예상되는 공사 기간만 20년, 투자금은 1000억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계획이었다. 하지만 5개월 뒤인 10월, 여의도 중앙 12만평 부지에 아스팔트 광장을 조성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오며 계획이 뒤집힌다.


이후 의사당 건축은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당대부터 판을 치던 관료주의 때문이다. 최초의 설계공모는 유명 건축가인 강명구, 김수근, 김정수, 김중업, 이광노, 이해성 총 6명을 지명해 진행되었다. 하지만 몇 주 후에 또 다른 설계 공모가 이중으로 실시된다. 설계 기간은 고작 2개월이었으며, 설계자에게는 저작권도 인정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다. 공모에 참여하기로 한 김정수, 김중업, 이광노, 그리고 일반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꼽힌 안영배 네 사람에게 공동안을 제출하라는 요구가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고민 끝에 공동안을 만들기로 하고 1차 설계안을 제출했다. 캐노피가 중층으로 되어있고 기둥이 있는 형식이었다.



갖은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었지만, 정작 그곳에 들어갈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의사당이라고 하면 미국 국회의사당이나 유럽의 돔이 있는 건물 같아야지, 왜 여긴 돔이 없냐


는 것이었다. 건축가들은 차선책으로 기둥이 앞에 있고, 돔이 납작한 안을 주장했다. 물론 이들의 안은 거절당했다.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청와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건축가들이 배재된 고위관료들과의 브리핑 자리에서 건물의 층수를 문제삼았다. 일제의 상징인 중앙청 건물(5층)보다는 높게 지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물론 층수는 높이되, 주어진 예산과 면적은 그대로였다. 결국 의사당은 전체 넓이를 축소하고 한 층을 올린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국회의사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획을 시작하려는 (혹은 기획을 맡기려는) 당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방식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우선 첫 번째는 다른 서비스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이다. ‘OO 같은 앱(OO의 자리에는 대개 최근 몇 십 억 규모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서비스나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해외 서비스, 또는 카카오톡이 들어간다)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기획이 시작되는 거다. 두 번째는 자신이 생각한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이를 판매하는 방법으로 기획을 시작하는 경우이다. ‘이런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앱/웹이 필요할 것 같아!’라는 식. 말하자면 두 경우 모두 ‘국회의사당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기획 경험이 있다면 이후에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만) 이후의 과정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


하나. 기획자가 의뢰자(대표, 상사 등)의 아이디어를 듣고 기획 초안을 만든다.

둘. 의뢰자가 그 기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셋. 의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내가 ~~에서 봤는데요. A라는 기능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 B랑 C 기능도 필요하겠네요. D 기능은 혹시 가능하면 넣어주시고요.”

넷. 이 과정이 반복되고 기획이 산으로 간다. 실패할 기획이 완성(?)된 것이다.


내가 처음 기획한 앱 서비스의 2.0버전은 메인 화면만 20장이 넘는 시안이 만들어졌다. 돌이켜보면 굳이 큰 변화가 없더라도 사용자들이 만족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에서 봤는데 이 기능이 추가되는 건 어떨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앱 정체성이 이러이러한데 이 기능을 메인에서 빼는 건 좀 그렇지”, “수익화를 하려면 이 기능도 일단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 페이지로 충분하던 화면은 스크롤이 필요해졌고, 사용자들은 방황했다. “그래서 이 앱 정체성이 뭐예요?”, “이 앱 원래 ~~하려고 쓰는 앱 아니에요?” 매일 같이 이런 문의와 항의가 빗발쳤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우리는 3개월만에 대거 기능을 뺀 2.5버전을 출시했다. 3개월, 아니 2.0버전을 기획하던 기간까지 포함해 1년 여의 시간을 버린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아이디어의 핵심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서비스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당신의 서비스를 국회의사당처럼 만들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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