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Sep 05. 2020

한 명이면 충분하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자라온 환경, 시선이 갔던 영화나 책, 사람들을 통해 어느 순간 내가 누리는 편안함이 누군가의 착취를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안일한 변명에 빠져 있는 사이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어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보였고 알게 된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허둥댈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선구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동물보호 운동가 또는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천 방향은 그대로 내 인생의 목표이자 방향이 되었다.



동물과 환경, 여권 신장에 보탬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생활은 익숙해진 패턴을 돌아보며 수정하고 검열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살 때마다 환경에 덜 해가 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기업인지, 들어가는 재료에 동물성 성분은 없는지 확인한 뒤 결제를 한다. 하루에 몇 장씩 쓰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준비하고 채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법부에 분노하며 성명서에 사인을 한다. 일대일 결연을 맺은 유기견들이 잘 회복되어 건강히 지내고 있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이메일을 읽으며 잠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퇴근 후 남편과 유기견 봉사활동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제 막 식습관을 바꾸기 시작한 남편과 상의하여 최대한 채식에 가까운 저녁 메뉴를 선택한다. 잠들기 전 환경 이슈, 페미니즘에 관련된 뉴스 기사나 글을 읽으며 마무리한다. 처음엔 그저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녹초가 되어 뻗은 날들도 많았다. 이게 맞는 걸까, 왜 나는 모든 과정을 알고도 가끔 치킨이 생각나는 걸까, 어차피 범죄자들은 뻔뻔하게 살아갈 텐데 이런 서명이 의미가 있을까 등 후회와 좌절, 고통의 시간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노력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새로운 방식의 삶에 적응기가 지나며 익숙해졌다. 비록 완벽한 비건, 완벽한 페미니스트라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것이 나를 막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무엇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 더 효과적인 일은 무엇일지, 도움이 절실한 곳은 없는지 찾는 이 길에서 어렴풋하게 삶의 의미라는 것을 느끼는 날들이 늘어 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지치거나 무력감에 허우적거릴 때마다 다시금 끌고 가 준 든든한 지원군, 내 반려자가 있었다.



남편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평균치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또한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훌륭한 연인이자 반려자였다. 한국에서 주요한 여성 혐오 이슈가 있었을 때에도 그는 반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먼저 돌아봤다.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란 한국인, 한국 남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것, 내가 걸어온 길을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하더라도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한국 사회는 익숙하지 않은 가치에 엄격한 잣대를 드리우는 곳이었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면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쏟아질 뾰족한 시선과 질문을 견딜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와의 싸움을 하는 동시에 사회의 암묵적 룰 -튀지 않는 것- 을 지키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온라인 공간의 간접적인 연대를 통해 위안을 받긴 했지만 내 하루의 대부분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부끄럽게도 의지란 것은 너무도 유약하여 현실 핑계를 대며 쉽게 무너지는 날들도 있었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악몽을 꾸었다. 나는 이러한 내적 스트레스까지 모두 남편에게 감당하도록 했다. 타인으로부터, 나로부터 받은 실망을 반려자를 통해 구원받고 싶은 이기심, 너라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거라는 기대였다. 그는 고맙게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잘 몰라 답답하더라도 노력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해 준 덕분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매일 페미니즘 이슈나 환경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생활 속 실천할 수 있는 방향들을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함께 비건 행사에 참여하며 일회용품을 대체할 물품에 소비하고 매일 마주하는 성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혹여 놓친 것은 없는지, 더 나은 실천 방법이 있는지 고민한다.



반려자는 지지자인 동시에 좋은 의미의 감시자였다. 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을 확립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외모 강박에 스스로 괴로워할 때면 그는 지겨워하는 대신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한 게 먼저라며 쓸데없는 생각의 굴레를 끊어 주었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일회용품을 낭비하고 있었던 걸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내가 한 번의 좌절로 무너지거나 작은 성취가 오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건강한 관계에서 얻는 에너지는 타인을 한 번 더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사람이었다. 희생이 아닌 우리가 더 우리다워질 수 있는 동행. 그것은 결혼식에서 우리가 맹세한 평생의 약속이기도 했다. 가족이든 연인이나 친구이든 우리는 단 한 명의 존재로 삶을 포기할 수도 지속할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나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원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그 '한 명'이다. 바로 옆 사람에게 힘이 되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이 세상을 버텨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