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식 퀴즈를 하나 내본다. 당신에겐 '명예'가 있습니까. 일단 명예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라고 볼 수도 있고, 이름값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명예는 그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줏대쯤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인간이 떳떳할 때만 쓸 수 있는 단어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자 그럼 대답해볼까. 그전에 명예로운 지인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자기 직업에 대한 신념이 명확하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해야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윤리적 기준까지 뚜렷하다. 생계 활동 중 부당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정해놓은 자신만의, 직업적 가치의 선을 넘는 순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기준을 오롯이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알아봤고 그 환경에 자신을 갖다 놓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이나 쓸데없는 자기반성 따위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기준이 뚜렷하기에 지향점이 같은 환경과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본인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결단을 내린다고 하는데, 부분적인 후회는 있겠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늘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었고, 지금도 번잡하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내가 그를 명예롭다고 생각한 건 바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완벽한 생계형 인간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 다툼, 분쟁, 비난이다. 그리고 가난과 급격한 환경 변화는 더욱 싫다. 지인과 달리 난 돈이 흐르는 쪽으로 내 의견을 쉽게 바꾼다. 고집도 줏대도 있는 사람이나, 돈 앞에선 어쩔 수 없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엔 '하는 척'하며 시간을 보내고, 윤리적으로 직업의 가치가 조금 뭉개지더라도 '이것쯤이야'한다. 남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내가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쉽게 속세와 타협하고 협조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과 내일의 기분이 쉽게 달라진다. 미래 청사진도 무지개 마냥 다양한 색깔로 매일매일 바뀐다.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뭐 때문에 사냐고 묻는다면 그야말로 혼란스럽다. 성격 좋게 타협하면서 사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남에게 맞추고 싫어하는 환경에 무던히 적응해버리니 호불호가 불투명해졌다.
아니라고 할 때 NO라고 외칠 수 있는 것.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YES라고 긍정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 그런 노력만이 비로소 생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명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임을 깨닫는다.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언젠가 후회할 타협과 양보를 하는 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후회의 끈만 길게 늘이는 일임을 인정해버리니, 복잡했던 머리가 오히려 깔끔하게 정리됐다.